나는 요즘 여고삐리에게 삥뜯기구 있다..8

 


허리가 반쯤 구부러진 나무들을 곁에 두고....

고요한 숲의.. 그만에 독특한 향기를 내뿜는 그곳.....


그곳엔.. 사람의 손이 많이 탄 듯한....

작은 묘지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실 산에 오르던 처음부터..

그녀가 어떤 이의 무덤에 갈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었다....

양복을 입은 체 산에 올라가자고 하는데....

그걸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더 이상한 일이리라......


그러나 내가 정작 궁금해했던 건....

'과연 누구의 묘지'일까란 것이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부모님도 모두 살아 계셨고.....

그렇다고 딱히 형제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럴 땐..... 어떠한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는.....

조심스레 내 스스로 느끼는 것이 현명하리라......

 


그녀는 무덤 가까이로 서서히 다가섰고.....

마치 자신의 방에 앉듯... 무덤 앞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무덤 앞에 앉은 체로.....

나는 그런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체로.......

우리는 잠시.. 고요한 공간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고요함이.. 서서히 어색한 침묵의 시간으로 흘러갈 쯤....

그녀는 자신의 말로.. 조심히 침묵을 허물어 버렸다........


"얌마....... 너 인사 안 해.........??"


나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듯.....

가볍게 목만 살짝 굽혀 인사를 드렸다......


"아...안녕하세요............(__) 꾸벅.. " -_-

"야.....!! 너 죽을래.........!!!"


"인사하라메........ 목례했으면 됐지 뭐...................;;"

"여기 무덤 옆에... 니 묘 자리도 하나 더 만들어 줄까.........??"

-_-


누구의 무덤인지도 모른체......

나는 조심스럽게 내 몸을 굽혀 절을 올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행동이 끝났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 주었다.......

 


이 무덤의 주인은..

이년전에 돌아가신 그녀의 친아버지라고 한다......


현재 그녀와 살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뒤..

단 일년 반만에 그녀의 어머니가 재혼을 하신 양아버지였고......


아직은 어린 그녀였기에.....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현실을 쉬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교가 끝나고 매일같이 찾아왔던 곳이 여기였고....

이 곳에 올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새아버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나보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도 아버지를 많이 따랐던 그녀였고.....

아버지 또한 그러한 자신의 딸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기에......

그녀로써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슬픔을 그렇듯 조심스럽게 꺼내준 뒤.....

그녀는 나를 옆에 둔 체......

마치 살아있는 사람에게 얘기하듯... 자신의 친아버지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아빠.... 어제 말했었지.......??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어제 말한 그 사람이야........

아빠처럼 멍청하고 바보 같고.... 지가 천사인줄 아는 사람.......

아빠처럼 느끼한 말투에.. 느끼한 구레나루도 가지고 있어.....

근데 있잖아... 내가 그런 아빠를 좋아했듯이... 나 이 사람도 싫지가 않아........

나.. 나중에 이 사람이랑 결혼 할까봐......

그럼 아빠가 살아있을 때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 같거든..."


그녀의 눈빛이.. 아침 잎새에 묻어있는 이슬처럼...

촉촉히 젖어들어 갈 때.....

나는 더 이상 그러한 그녀의 슬픔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지금의 그녀의 흐트러진 모습을..

영원히 인간적으로 담아두고는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아파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러한 그녀의 슬픔에.....

작은 조약돌 하나를 던져주었다........


"야......!! 누가 너랑 결혼한다구.........?? 아저씨.... 아니에요......

저 얘하고 결혼 안 할 거에요......."

"아니야...... 아빠......... 이 사람 나하고 결혼해야만 해..........

사실 어젯밤.... 나 얘하고 첫날밤도 보냈어........."


"야......!! 누가 너하고 첫날밤을 보냈다고 그래.......??"

"너... 어제 나랑 같이 잤어 안 잤어........??"


"야.... 우린 잠만 잤잖아.........."

"시발.. 남녀가 한 이불 속에서 잠만 잤다고 하면 누가 믿어주냐.......!!! 너... 원조교제했다

신고해주까.....??"

-_-


그렇듯 우리는.... 마치 그녀의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셋이서 달콤한 대화를 나누었다........


나무 사이로 나와 그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질 때......

내 귓가로는.... 나와 그녀의 단 둘만의 것이 아닌.........

무덤 안에서.. 한 사람의 웃음소리가 더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산에서 내려오며.....

그녀는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고마워........."

"뭐가.......??"


"그냥.........."

".............."


그녀도 들었던 것일까.......

그녀의 아버지의 웃음소리를...........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다시금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고......

서울에 거의 도착할 쯔음...

그녀는 내게 말해왔다.....


"나... 술 한잔 사죠......"

 


인테리어가 특이한.. 조용한 술집...


양 벽면에는 부엉이 모양의 시계가 매달려 있고...

그 아래로는 뱀 모양의 나무 줄기들이..

가지를 치듯 쭈욱 내려져 있었다...


그녀는 몇 분째 아무 말 없이 술잔만 거푸 비우고 있다....


슬프거나 괴로울 때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과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자기의 시간을 마시는 짓이라는 것은 알지만......


나는 그녀의 그러한 행동을 굳이 말리고 싶지 않았다......


나를 대신해....

술이라도 그녀에게 위로가 되어 주기를 바랄 뿐인 것이다....


소주병이 테이블 위에 하나씩 쌓여지고.....

결국 그녀는... 테이블 위에 조용히 쓰러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아주 나즈막하게 내게 중얼거렸다........


"나.... 내일은 집에 들어 갈 거야........

더 이상..... 도망치기 싫거든......."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조여왔다.......

밝은 웃음에.... 친구들과 즐거이 어울려야 하기도 부족한..

그런 그녀의 나이가 아닌가.....


또다시... 그녀를 이토록 아프게 하는......

이 사회의 현실이 원망스러워졌다.....


자기 몸조차 쉬이 가눌 수 없을 만큼 취했던 그녀였기에.....

나는 그녀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은 체 뒤돌아 앉았다....


"업혀..... 집에 가자......."

"내가 애냐.....?? 너한테 업히게........ 됐어 걸어갈래............."


그녀는 테이블에 손을 얹고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결국은 중심을 잃은 체.... 넘어지고야 말았다..........


쿠~~웅~~~*


"그러게.... 업히라니까 그러네.........."


그제서야 그녀는 내 등에 업혔고......

자신이 술에 취했다는 것이 부끄러운 듯......

잠시금 변명의 소리를 해왔다.....


"나.... 술 취해서 너한테 업히는거 아냐..... 그냥 니 등짝이 종나 넓어 보여서 업히는 거
야..."

"그래.. 알았어 알았어...... 너 술 안 취했어......... 더러운 세상에 취했을 뿐이지........"


"시발.... 또 느끼한 소리하네..... 오바이트 쏠리니까 그 딴 소리는 좀 집어쳐라..........."

"그래... 미안해....... 근데 있잖아......... 너 진짜 무겁다..........;;"


"너 죽을래.....?? 무겁긴 뭐가 무겁냐......

예전에 울 아빠가 나한테 '산소 같은 여자'라고 했단 말야........"

"푸캬캬캬...... 내가 쌀 두가마니도 들어 맸던 사람이야......

근데 내가 봤을 땐 니가 훨씬 무겁다.... 요즘 산소는 쌀 두가마니보다도 더 무겁나 보
지.....??" -_-


"아씨.. 나 내릴래........!!"

"알았어 알았어..... 너 산소만큼 가벼워...........;;"


술에 취한 그녀는 내가 업기에는 정말로 무거웠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정말로 무거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속에 짊어진.. 그 아픔의 무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원룸에 다 도착할 무렵.......

어느새 그녀는... 내 등에 업힌체 잠에 빠져있었다.......


'소곤소곤' 내 지르는 그녀의 숨소리가...

내 귓가를 살며시 간지름 태울 때....

나는.. 내 목줄기 사이로 따스한 뭔가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울고 있었던 것이다........


군데군데 설치된 가로등이 우리를 밝혀주고....

밤하늘에 밝게 떠 있는 반달 또한...

우리를 살며시 밝혀주지만......


그 어떤 빛도.....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그리움만은... 밝혀줄 수 없었나 보다........


내 목줄기를 적시던 눈물과 함께.....

그녀는 작고도 조용한 중얼거림을 내 뱉었다......


"아빠........ 아빠... 보고 싶어..........."

 


다음 날 아침....

내가 눈을 뜨기 전에...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말처럼...

이제 그녀는 더이상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나를 만나고.. 나에게 마음을 의지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현실에.. 더욱더 도망치고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짧은.. 동거 아닌 동거생활은....

작은 추억만을 남긴체... 마치게 된다......

Posted by 빈블랭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