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여고삐리에게 삥뜯기구 있다..9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술에 취해 비틀대며...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아픔은 가지고 있고........


그 아픔을 묻어둔체....

자신의 삶을 힘겹게 걸어가곤 한다......


그 사람들의 우울한 그림자.. 쓸쓸한 외로움이 있기에.....

나는... 그들을 사랑하는 지도 모른다......


완벽하기만 하다면.. 내가 굳이 다가갈 이유가 없겠지만......

내가 그들에게 뭔가가 되어줄 수 있기에......

우습게도 나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고.....

그처럼 거칠어 보였던 그녀가....

전단지를 돌리는 할아버지를 돕는 모습에...('양아치 소녀 이야기'참고..)

나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아픔을 내면 속에 담아두고 있었고...

결국 그것이 곪아...

그처럼 고왔던 그녀가.. 자신을 망가뜨리려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그녀는...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이....

그녀의 어머니나.. 새아버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그녀의 아픔의 의미를 알았고.......


내가 그런 그녀에게 무엇인가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그녀에게... 감사 드린다.....

 


그녀의 아버지 산소에 다녀온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고.......

그 사이 그녀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언제까지 그녀가 담배 피는 것을 보고만 있을거냐"고...

어느 분이 메일을 주셨는데.....

바로 그 담배를 그녀가 끊었다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친구에게 놀러갔던 날.....


나는 그 친구에게 그곳 편의점에 있는 담배를......

종류별로 한갑씩만 달라고 했다........


"야.... 담배 종류별로 한갑씩만 줘봐라........."

"왜 종류별로 하나씩 다 펴볼려구.......??"


"내가 '미식가'인지 아냐... 종류별로 담배 맛을 다 보게.....

쓸데가 있어서 그러니까... 얼릉 주기나 해..........."

"돈을 줘야지 주지......."


"옛다.... 여기 오백원 있으니까... 종류별로 다 주고 이백원만 거슬러 주라..........;;"

-_-


나는 대략 이십개나 되는 종류의 담배에....

일번에서 이십번까지 차례대로 번호를 붙였고......

각 담배마다 한 개피의 담배만을 남기고는 속을 비워버렸다.......


대신.. 속이 빈 담배각 안에는... 글을 남긴 작은 종이를 둘둘 말아...

각 담배마다 하나씩 집어넣었다.....


예를들어.. 내가 팔번이라고 번호를 붙인 '디스'라는 담배 안에는....

한 개피의 담배 하나와 작은 종이가 들어있고.......


그 종이에는...

"이 담배를 피면서.. 약속하세요.......

앞으로는 친구들하고 싸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요......."

라는... 글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녀가 열번째로 태우게 될...

십번의 담배에는....

"이 담배를 피면서.. 약속하세요.......

앞으로는 코걸이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요........"라는 글이.......


그녀가 마지막에 태우게 될....

이십번의 담배에는.....

"이 담배를 피면서.. 약속하세요........

앞으로는 영원히 담배를 태우지 않을 거라는 것을요...."라는 글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내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들을......

각 담배에다가 하나씩 글을 써서 집어넣었고.....


나는 그 이십 종류의 담배를......

"번호순대로 하루에 한갑씩만 피워라"고 하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물론 그녀는.... 내 바램과는 달리.....

그 이십종류의 담배를 하루만에 다 피워버렸다........;;


그리고는 내게 말을 건네왔다.......


"내가 왜 너한테 그런 약속들을 해야 하는데.......??"


막상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녀와 연인이라도 된다면......

"널 사랑하니까......"라는 말을 해 줄 것이고.......

내가 그녀와 친한 친구 사이라면........

"너의 친구이니까......"라는 말을 해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연인도.. 친구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그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물쭈물하는 나의 모습에.....

오히려 그녀의 표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뭐라고 쉽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무 대답도 하질 못하는 나에게.. 뭔가가 많이 섭섭한 듯한 표정이랄까......


그녀 또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질 않더니....

잠시후 우리의 어색한 침묵을 깨뜨려왔다........


"그 약속들.. 내가 지키면.... 넌 나한테 뭐해 줄건데......??"

"뭐해 주면 지킬 건데.....??"


"음... 생각 좀 해 보자....... 음..... 음.......... 그래....!!!

내가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을 때마다.. 나한테 뽀뽀해 주면 지킬게.......!!"

"그냥... 없었던 걸로 하자......-_-)/~~"


"십쌔... 도둑 뽀뽀는 종나 잘하더만..........."

-_-


신기한 것은... 그 날 이후.....


그녀는 더 이상 내게 담배를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고......

코걸이도 더 이상 하고 다니질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녀에게 뽀뽀를 해 준 적은 없었지만.....

그녀는 내가 일방적으로 부탁한 그러한 약속들을....

자기 나름대로 지켜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담배를 끊고....

더 이상 코걸이를 하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

마치 그녀의 굉장히 중요한 변화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칠고 반항적이기만 했던 그녀가.....

이제는 웃을지도 알고...

자신을 아낄 줄도 아는 그런 소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예전의 친아버지와 함께 했던...

그녀의 모습을 되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맑고.. 순수하고... 명량한 소녀로.....


그리고 나는.... 그러한 그녀의 모습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나는 그녀의 연인도 친구도 아니지만.....

내가 그녀에게....

뭔가가 되어줄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러나 나는.....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 그녀를 아껴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내가 진심으로 그녀를 아껴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날은... 내가 부산에 내려가야 하는 날이었다....


몇일 전.. 부산에 계신 삼촌으로부터 맞선을 보라는 전화를 받았고.....

감히 삼촌의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던 나였기에.....

그날... 맞선을 보기 위해 부산에 내려가게 된 것이다.......


부산에 내려가기 전날....

나는 그녀에게 먼저 그러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나.... 내일 부산 내려가니까..... 당분간은 고시원에 없을거야........."

"부산엔 갑자기 왜....??"


"삼촌이.. 조카며느리 삼고 싶은 여자있다고.. 나한테 맞선 보라고 하시더라구......."

"지금 너 맞선본다고 했냐.....!!!!!"


"응... 어쩔 수 없어..... 나한테는 아버지 같은 삼촌이라서...........

왜 내가 맞선안봐야대는  이유라도 있니.........??"


내 말에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질 않았고.....

알 수 없는 침울한 표정으로....

"잘 갔다와......."라는 말만을 던졌다.......


그리고 그날 밤.....

나에겐 얘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 밤... 내가 한참 잠에 빠져있을 때....(나는 한번 잠에 빠지면 날 봇삼해가도 모른다..)

그녀가 내 고시원 방에 몰래 침입을 해서.....

면도기로 내 눈썹을 밀어버렸던 것이었다.....;;


혹시 일주일 동안 밖에 나갈 일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눈썹을 함 밀어봐라...

정말... 참 -_-한 얼굴 된다......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맞선을 못보게 하기 위해...

내 눈썹을 밀어버렸던 것이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약간의 언질을 줘 보았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눈썹을 밀어버릴 수 있냐........??"

"왜 눈썹 없으니까 시원해 보이고 좋구만..........;;"


"그래도 이건 넘하잖아.........."

"넘하긴 뭐가 넘해.....!! 맞선 소리 한 번만 더해봐라....

그 때는 니 거시기 털도 확 밀어버릴테니.......!!"

-_-


그날 난.... 부산에 내려가는 대신 삼촌에게 전화를 드려야됐다.......


"삼촌... 저 부산 못 내려가게 됐어요...... 정말 죄송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일 맞선 보는거 몰라.......??"


"그게 있잖아여..... 눈썹이 엄써 졌어여.......-_-a"

"눈썹이 없어지다니......??"


"그런게 있어여..... 어쨌든 죄송해여.........;;"


비록 맞선을  못했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왜인지.... 오히려 그녀의 그런 행동에 기쁨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녀를 버스 정류장 앞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속된 말로.. 나는 수많은 것들을 그녀에게 삥 뜯겨왔다......

담배에서부터 차비.. 심지어는 잠자리까지.......


그러나 요즘... 내가 그녀에게 뜯기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부산에 내려가는 대신.....

그녀와 함께 놀이동산 야간 개장에 가기로 했다.....


하교시간에 맞춰....

그녀의 학교 앞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체....(눈썹을 가리기 위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학교에서 나왔고.........


그녀는 내가 부산에 내려가지 않은 것이 그리도 좋은지......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띈체 내 팔짱을 끼고는.....

근처의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우리 옆으로 고급 승용차 하나가 멈춰서더니......

사십대 중반의 한 중우한 남자가 내려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남자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서서히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Posted by 빈블랭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