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양심은 우주의 마음입니다.
우주의 신성과 만난 사람은
참다운 사랑을 할 수 있고
참다운 덕을 배풀 수 있습니다.

양심이 바로 신성이며
그것이 바로 본성입니다.

이것을 만족시킬 때
인간은 완전한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주의 신성과 만나는 순간을
깨달음이라고 하고 구원, 성통이라 합니다.

인간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지만
개인의 행복은 소유욕을 만족하는데서 오고
전체의 행복은 양심을 회복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늘은 양심있는 자를 찾아 세워서
그 사람에게 하늘의 마음을 비춰 주고 사명을 줍니다.
사명을 받은 자에게 협조자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조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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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블랭크

나를 철들게 한 나의 할머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아버지가 남기신 빚을 갚기 위해
서울로 떠나신 후, 다섯 살이던 저와 세 살이던 남동생은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손에 맡겨졌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기억나는 어린 시절이 있겠지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 할머니 손에 맡겨지고 1년이 지난,
여섯 살의 봄입니다. 불행히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
지금까지도 제 가슴 속에 아픈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날, 도시 생활을 하고 있던 친척들이
저와 제 동생 문제로 할머니 댁을 찾았습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와 친척들 간에 언성을 높이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안 된다는 말씀만 반복하셨고,
친척들은 사는 게 힘들어서 도와 줄 수 없다는 말만 거듭 했습니다.



큰아버지는 저와 제 동생에게 새 옷을 입혀 주고, 새 신을 신겨 주며,
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울먹이시던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아버지는 저희 남매 손을 이끌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친척들 누구하나 따라 나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다르셨습니다.
버선발로 뛰쳐나와 저희 남매를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안 된다. 절대 못 보낸다. 고아원에도, 아들 없는 집에도, 나는 못 보낸다.
죽은 내 아들 불쌍해서 이것들 못 보낸다.
니들 헌티 10원 한 푼 도와 달라구 안 헐라니까 보내지 마라.
그냥 내가 키우게 놔둬라.”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목 놓아 우셨습니다.



그날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제 남동생도 없었겠지요.
할머니의 눈물이 지금의 저희 남매를 있게 해 준 것입니다.
고아원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들 없는 집에 보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희 남매는 할머니께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것인데
그게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철이 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할머니는 친척들께 약속하신 대로 10원 한 푼 받지 않고
저희 남매를 기르셨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시며,
받아오신 품삯으로 생활을 꾸려가셨습니다.
할머니가 저희 남매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셔야 했는지,
스스로 얼마나 억척스러워지셔야 했는지,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습니다.



그저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새 옷 한 벌 없이 남의 옷만 얻어 입는 것이 불만이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학용품을 넉넉하게 쓰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마음 놓고 과자 한번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
소풍에 돈 한 푼 가져갈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
운동회 때 할머니랑 함께 달리는 것이 불만이었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나
불쌍한 아이 취급받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배부르게 먹이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새 옷 한 벌 사주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렸을지,
남의 집으로 옷을 얻으러 다니며 할머니가 얼마나 고개를 숙이셨을지,
넉넉하게 학용품을 사 주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어땠을지,
소풍간다고 김밥 한번 싸주지 못하고
용돈 한 푼 주지 못하는 그 마음이 어땠을지,
다른 아이들은 운동회 때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을
나이 드신 당신 몸으로 해 주시느라 얼마나 진땀을 빼셨을지,
어디서나 애비 에미 없다고 손가락질 받는 손자들을 보며
얼마나 가슴을 쓸어 내리셨을지,
그때는 철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그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더 불쌍하게 보여서
뭐 하나 얻으려고 애쓰는 할머니의 모습이 싫고 창피할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저희 남매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사셨습니다.
당신의 체면이나 얼굴을 모두 버리시고,
오로지 저희 남매를 위해 사셨습니다.
앉았다 하면 신세 한탄이 먼저 나오고,
불쌍한 손자들 얘기를 풀어 놓으며 눈물을 훔치시기 바빴지만,
할머니가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과자 한 봉지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이발소에서 공짜로 머리를 자를 수도 있었고,
새 연필 한 자루라도 얻어 쓸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철없는 남매를 기르시면서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누구보다 억척스럽고 강하셨지만,
또 누구보다 여리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남의 집으로 일을 가시는 날에는 새참으로 나온 빵을 드시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시는 분이셨고,
1주일에 한번 장으로 나물을 팔러 가시는 날에는
순대를 한 봉지씩 사다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동생과 제가 싸우면 뒤란에 있던 탱자나무 가지로 심하게 종아리를 치셨지만,
붉은 줄이 그어진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시며 금세 눈물을 훔치시는 분이셨고,
맛있는 과자를 마음껏 못 사줘 미안하다며 문주를 부쳐주시고,
개떡을 쪄주시고, 가마솥 누룽지에 설탕을 발라주시는 분이셨고,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에는 우산 대신 고추밭 씌우는 비닐로
온 몸을 둘러주시고 빨래집게로 여기저기 집어주시며,
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이 너는 우산도 없느냐고 놀리거든,
“우리 할머니가 이렇게 돌돌 싸매면 비가 한 방울도 못 들어와서
옷이 안 젖는다더라.
너도 니네 엄마한테 나처럼 해달라고 해봐.”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시던 분이셨습니다.



비록 가난해서 봄이면 나물을 뜯어다 장에 내 팔고,
여름이면 고기를 잡아다 어죽 집에 팔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따다 묵 집에 팔고,
겨울에는 손에 마늘 독이 베이도록 마늘을 까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와 함께 했던 유년의 그 시간들이
스물아홉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행복이라는 걸 몰라서 할머니 가슴을 많이도 아프게 했지요.
저는 가난이 싫었습니다. 억척스러운 할머니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반항적이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제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제 마음을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는 할머니가 미워서 버릇없이 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가 부끄럽다는 생각은 했으면서도,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불쌍하거나 안쓰럽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몰래 눈물을 훔쳐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할머니가 제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사춘기의 저를 이해 못했던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우리 남매가 아니었다면
혼자 편하게 사셨을 할머니가 손자들을 떠맡은 죄로
불쌍하게 사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철이 들 무렵에야 알았습니다.



저와 남동생은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각각 천안에 있는
상고와 예산에 있는 인문고등학교에 진학해 자취 생활을 했습니다.
저희 남매는 주말마다 할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내려갔는데,
그때마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그 안에 빵과 우유가 가득했습니다.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셨던 할머니가 새참으로 나온 빵과 우유를 드시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셔서 냉장고에 넣어놓으신 거였습니다.
남들 다 새참 먹을 때 같이 드시지 왜 이걸 냉장고에 넣어 놓으셨냐고,
유통기한 다 지나서 먹지도 못하는 데 왜 그러셨냐고 화를 내면,
“니덜이 목구멍에 걸려서 넘어가야 말이지.
니덜 오먼 줄라고 냉장고에다 느 놨는디, 날짜 지나서 못 먹으먼 워쩐다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번도 할머니를 가엾다고, 안쓰럽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제가,
냉장고에 가득하던 빵과 우유를 내다 버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데,
할머니가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제가 철이 들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자취하는 제게 김치와 쌀을 갖다 주시겠다고 올라오신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터미널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 찾아낸 할머니는 반갑게 제 손을 잡으시며
“아침 7시 차 타구 나왔더만, 10시두 안 돼 도착허더라.
한 3시간은 이러구 서 있은 모양이여.
기다리다 배고파서 나 먼저 짜장면 한 그릇 먹었다. 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또다시 가슴 한 구석이 아렸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께 화를 냈습니다.
“그러게 내가 아침 드시고 천천히 출발하시라고 안 했어!
할머니 때문에 속상해 죽겄네.”
할머니는 화가 난 손녀딸의 눈치를 살피시며 들고 오신 가방 지퍼를 여셨습니다.
할머니가 들고 오신 큰 가방 속에는 김치 통 두 개가 들어있었고,
가방 안은 김치 통에서 흘러나온 빨간 김치 국물로 한 가득이었습니다.
“내가 할머니 때문에 미치겠네. 김치만 비닐봉지에 꼭 싸서 가져오셔야지,
가방에다 김치 통을 통째로 넣어오면 국물이 안 넘친데?”
할머니는 금세 얼굴이 붉어지셨습니다.
“이를 워쩌까. 국물이 다 새서 못 들고 가겄다.
내가 언능 수퍼 가서 봉다리 얻어올팅께 지달려라, 이?”
할머니는 터미널 안 슈퍼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얻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김치 통을 봉지 안에 넣어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네덜이 지덜언 짐치 안 먹구 사나,
노인네가 버스 안에서 김치 냄새 좀 풍겼기로서니,
그렇기 코를 막구 무안을 줘?”
할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받으며
안절부절 하셨을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할머니는 김치 전해 줬으니 그만 가 봐야겠다시며
들고 오신 가방 안쪽 작은 지퍼를 열고
꼬깃꼬깃 접은 1만 원 짜리 두 장을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1만 원 짜리는 빨갛게 물들어서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던 저는 얼른 매표소로 뛰어가
할머니 차표를 끊어다 드리고 할머니를 배웅해 드렸습니다.



그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 안에서
얼마나 소리 내어 울었는지 모릅니다.



할머니가 젖은 가방에서 꺼내 주셨던,
빨간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던 1만 원 짜리 두 장을 손에 꼭 쥐고,
사람들이 가득한 버스 안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역회사에 취직한 저는 돈을 벌게 되었고,
이제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하면 약재시장에 가서
좋다는 약재를 사다 보내 드리고, 할머니 생신이 다가오면
동네 할머니들과 식사라도 하시라고 용돈도 보내 드리고,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와 장으로 구경도 나가고,
명절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도 사 드렸습니다.



처음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를 먹던 날, 할머니는
돈가스 한 접시에 음료로 나온 사이다 한잔까지 쭉 비우신 뒤 말씀하셨습니다.
“양두 얼마 안 되는 것이 참말로 맛나다, 이?
이런 것이먼 몇 접시라두 먹겄다.”
저는 할머니의 그 말에 또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그까짓 돈가스가 얼마나 한다고 이제서야 사드리게 됐을까.
가슴이 아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제가 먹던 접시를
할머니 앞에 내어 드렸습니다.



그날 하얗게 서리 내린 할머니 머리를 내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맛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 드리리라.
남들 먹는 거, 맛있다고 하는 거, 한번씩은 다 맛보여 드리리라.
좋은 옷도 입혀 드리고 멋진 구경도 맘껏 시켜 드리리라.



언젠가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손녀딸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고,
이쁜 새끼 낳아 사는 거 보고 죽으먼 내가 소원이 없을 것인디.”
저는 할머니의 소원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다음 달이면 돌을 맞는 예쁜 딸아이도 낳았습니다.



할머니는 올해로 팔순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우리 남매를 길러 내셨던 할머니는
이제 정말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허리도 구부러지셨고, 검은머리가 한 가닥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너무 늙으셔서 예전처럼 맛있는 문주를 부쳐 주시지도 못하고,
개떡을 쪄 주지도 못하고, 누룽지에 설탕을 뿌려 주시지도 못합니다.
뜨거운 밥에 올려 먹던 할머니의 얼짠지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이제는 그때 그 맛을 내시지도 못합니다.
같이 봄나물을 뜯으러 다닐 수도, 도토리를 따러 다닐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할머니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 하면, 낡고 닳아 헤진 고무신 한 짝이 떠오릅니다.
헌 고무신처럼 평생을 마음껏 가지지 못하고
지지리 고생만 하시며 살아오신 할머니,



이제 할머니가 제 곁에 함께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언제일지 모를 그날까지 제가 할머니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요?
꽃으로 태어났으나 들풀로 사셔야 했던 그분의 인생,
이제부터라도 화사한 꽃으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걸
가르쳐 주신 할머니!
이제 저는 할머니의 사랑과 고생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철이 들었습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우리 할머니 손을 잡고 꽃길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오래 전 눈물나게 아름다웠던 유년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웃어 보고 싶습니다.



올 봄에도 꽃은 피겠지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이 글은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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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블랭크

고국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질 때에는 인터넷으로 한국뉴스도 보고 개그프로그램도 보고 이렇게 인터넷으로 여러분들의 일상을 구경하며 웃고 눈물 짓기도 하는 서른을 넘겨버린 젊은이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남녀간 데이트 때 더치페이 문제, 루저 소동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제가 받은 사랑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안녕하세요 점점 동이 터오네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무리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글을 다시 쓰려니 표현이 다소 서툴러도 이해해주십시오.

 

 

 큰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부도를 맞으시고 우리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그 등쌀을 피해서 생활하다가 입 하나라도 덜고 학비걱정이나 좀 덜려고 군대를 자원해서 갔습니다.

 제대 후에도 집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학기 휴학해서 돈을 벌고 한학기 다니다가 한학기 또 휴학하고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경남의 한 중소도시 대형마트에서 일했는데 커피나 햄 같은 거 시식할 때 나레이터모델들을 고용해서 유니폼 입혀서 시선을 끌고 손님들의 시식을 종용하는 역할을 맡기는데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모델이 있었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 잘하는 모델들 틈에서 유독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손님들이 다가와서 알아서 시식하고 물어보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더라는 거죠.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인상 깊어서 저도 다가가서 시식하고는 몇 가지 물어보고 했는데

 이 모델분은 나레이터모델답지 않게 말하는 것도 너무 수줍어하고 얼굴 빨개지고...ㅎㅎ
 

 원래는 밤늦게까지 매장정리하고 맨마지막에 퇴근을 하지만

 그날은 죽어도 일찍 가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나레이터모델들 마치는 시각에 맞춰 출구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그분들이 우루루 몰려나와서 각자 집으로 가기도 하고 몇몇은 시내에서 놀기 위해 같이 택시 타고 가는데

 이 여성분만 외톨이처럼 혼자 버스를 기다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저..매장에서 일하는 OO인데, 남자친구 없죠? 저랑 사귀어보는 건 어때요? 저 정말 괜찮은 놈인데요..제발요...주절주절.." 하면서 울상을 지으니까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아! 기억해요" 하면서 아는 척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폰번호를 얻었어요. 저는 돈이 없어서 휴대폰도 없었구요.


 그래서 시식행사가 잡힐 때마다 우린 늘 보게 되었죠.

 그 친구는 일부러 마트 행사를 자원했구요. 일하기 편한 대신 페이가 적어요.
 그래도 제가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나레이터모델분들이 더 많이 받으시더라구요.

 외부행사 나갈 때는 더 많이 받고..

 지명되면 거기서 더 받고..

 


 우린 너무 가난한 커플이라서

 남들 먹는 커피숍이나 스파게티점이나 피자헛에도 못갔어요.
 그리고 학비도 모아야 했고 집에도 보태야 했던 저보다는

 아무래도 돈을 좀더 받고 집안형편도 조금 나은 여자친구가 데이트비용을 거의 부담했구요. 저는 거지 중의 상거지, 개털 중의 상개털이었어요.

 집에서 쫓겨나면서 옷도 못가지고 나와서

 때 묻어도 티도 안나는 아래위로 군복을 구해서 입고 다녔거든요. 잠바도.

 막 입고 아무리 빨아도 티도 안나니까요.

 

 

 크리스마스 때는 길거리의 붕어빵이랑 군밤, 호도과자 섞은 게 우리의 만찬이었고 그걸로도 너무 행복해했어요.

 여중여고 앞 떡볶이도 우리의 주 메뉴였구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그런 거 우리한텐 사치였어요.

 다니다가 꽃바구니 버려진 게 눈에 띄면 주워서 기념일에 부직포와 솜을 사서 뽑기한 작은 인형과  ABC초콜렛이랑 칸쵸 같은 거 담아서 선물했구요. 화려한 케익과 포도주와 잔 두 개도 그림 그려서 앞에 두고 실제로는 초코파이랑 델몬트 병쥬스로 상상 속의 파티를 벌이며 즐거워하곤 했네요.


 저는 몰라도 여친은 착하고 키도 크고 단아한 인상이기 때문에 아마 길거리 고백도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한번도 그런 내색을 안해서 잘 몰라요.

 


 학교 다니면서도 과외도 하느라 만날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저는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도 안되는 사람이었구요. 언제나 제가 연락을 했죠.

 

 한밤 중에 끝나서 언제나 공중전화로 잠깐 통화를 하고

 일요일에야 좀 시간을 갖고 만날 수 있었네요.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여름에는 비 맞아가면서, 겨울에도 외부행사만 고집했대요. 찬바람 부는데도 짧은 치마에 배 드러나는 옷 입고 행사 했었대요. 돈 더 받아서 제 용돈 주고 제 학비 보태주려구요 ㅠㅠ 걔 친구들한테서 들었어요. 자외선과 대로변 자동차 매연과 먼지, 그리고 겨울바람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피부가 깎였을까요..)

 


 학교 다니는 내내 여자친구한테 용돈을 얻어 살았어요.

 처음엔 안 받았는데 여친이

 "나랑 결혼할 생각 없어? 결혼할 생각 가지고 있다면 돈 받아. 내돈이 네돈이니까 부담갖지 마. 그리고 친구들한테 얻어먹지만 말고 가끔 사주기도 하고 인심 잃지 말구. 남자는 인맥이 재산이잖아."

 그 친구가 이렇게까지 얘기해서,

 나중에 결혼해서 다 갚을게 하고 용돈을 받아썼습니다. 걔네 집에서 반찬 다 갖다 먹었습니다. 언제는 쌀도 가져왔더군요. -_-

 

 그 전엔 기본반찬인 김치 살 돈은 물론이고 쌀 살 돈도 없었거든요. 정말 완벽한 거지였네요. 현금은 물론 계좌지급까지 모두 정지 당해서. 맨밥에 간장을 살짝 묻혀 짭짤하게 비벼먹는 게 매 끼니의 반복이었어요.

 

 라면 사먹을 돈도 없어서 마트에서 라면박스 옮기다가 충격 받아서 부서진 게 가끔 나오는데 그걸 100원 씩에 사서 국 대신으로 국물 먹곤 했던 기억이 있네요.

자장면과 짬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중국집 앞에서 냄새만 배부르게 맡고 발걸음을 돌리길 수십번.. 결국 상가에서 내놓은 그릇에 담긴 짬뽕국물을 마시면서 그 갈증을 달래기도했습니다.

 


 저희집이 잘 살 때 제 동생이 사귀던 여자가 정말 착했는데 가난한 집안의 딸이어서 어머니 반대로 헤어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저희집이 가난해서인지 제가 사귀는 여자에 대해 어머니는 별 말씀을 못하시더라구요.

 고졸에 집도 그냥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집이라는 이유로

 예전 같았으면 결사반대 하셨을 어머니께서..

 


 그러다가 저희 아버지 사업이 다시 풀리기 시작해서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집도 찾고 아버지 어머니도 각각 자가용 굴릴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안정되었습니다.

 제 여친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구요.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갑자기 돈 생겼다고 돈 쓰고 다니면 또 예전으로 돌아가버릴까봐 너무 무서웠거든요.

 


 집에 빚이 너무 많아서 아마 나랑 결혼하면

 부모님 빚을 갚느라 40살 넘게까지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 잘하라고 해도 제 여친은,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대. 좀 덜 먹고 덜 입고 아껴서 열심히 살며 조금씩 갚아가면 설마 죽을 때까지 못 갚겠어? 난 자기를 믿어. 내 걱정이라면 하지마. 미안한만큼 평생 나만 사랑해주면 될 것 같은데? "

 그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미안해서..너무나 미안해서..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나레이터모델 친구들이 다 말렸대요.

 술자리에서 저한테 직접 얘기까지 하더라구요.

 착한 희영이 배신하면 자기들이 가만히 안둔다고.
 걔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유학가면 잘사는 여자들, 이쁘고 어린 애들도 수두룩할텐데 바보같은 너는 버려질 거라고.

 

 


 미국에 와서 어학코스를 끝내고 전략협상 분야를 공부했어요.

 쉽게 말해 Negotiator라고 하는데 협상전문가, 협상컨설턴트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한국과 미국이 무역과 시장개방 등의 문제로 FTA 할 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분이 한국측 수석대표로 주도하지 않았었나요? 그런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범죄현장에서 인질이 있을 때나 자살시도자가 있는 현장에 급파되어 일반경찰들이 현장 확보하고 SWAT 이 타격작전개시 하기 전에 쌍방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각국간 군병력, 화기 유지 및 연합훈련 등 각종 협의를 하는 자리에 동원되기도 하고, 혹은 대형그룹들 간의 딜과 기업인수합병을 위해서 고용되기도 해요.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해야 하고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서 우리쪽에 좀더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죠.

 우리 쪽에서 가장 강점으로 내세워 공격무기로 활용할 카드를 찾고, 상대 쪽의 약점을 찾아서 궁지로 몰아서 기를 꺾은 후 살 길을 터주는 식으로 며칠 동안 협상을 이어갑니다.

 상대도 손해보지 않은 듯 맞춰주는 동시에 우리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사수해서 최대한의 소득을 이끌어내는 거죠.

 肉斬骨斷(육참골단), 捨小取大(사소취대)의 사자성어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거죠. 군더더기 여러 조건들을 포용하는 대신 큰 덩어리 두 세 개를 가져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선 20년, 30년 후의 국제정세와 종목에 따른 계산까지 합니다. 물론 상대측에서도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뭔지 알 수 없어야 하는 거구요. 국제관계에서 그때의 종속관계를 위해 몇 십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양방간 상황과 입장에 대해 몇 달 전부터 고용되어 몇 달 동안 밤새며 공부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구요, 계약금, 약속된 수고료 외에 성사될 경우 보너스도 받죠.

 성사율이 낮을 땐 지명도도 떨어지고 금액도 낮아지고 소질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도태될 수도 있는 직업입니다.

 

 미국에서는 많긴 하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대우가 괜찮은 편이구요 한국에선 그런 전문양성과정이 없어서 아직 정부기관 및 대기업에서조차 인식이 미흡하고 금전적 대우도 미국만큼은 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식만 제대로 이해되고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겠죠.

 국내엔 전문가가 너무 희귀하니까.

 


 제가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도 제 여친은 저희집이 아직 빚에 시달리며 힘들게 공부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수시로 돈을 송금해와요. 그거 쓰지도 않고 꼬박꼬박 모아놨어요. 일부러 말은 안했구요.

 

 

 저희집 수준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제가 여기에서 공부마칠 때가 되니까 저희집에 선이 많이 들어온대요. 소위 돈 많은 집안에서요.

 우리나라에 돈 많은 집안이 그렇게 많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대도시 버스운송회사 소유주도 계시고, 서울 강남역 앞에 대형빌딩 몇 채 소유하고 계시는 집안도 있고, 할아버지 때부터 장관, 국회의원 해오신 권력집안도 있고, 거기다 인물도 좋다더군요. 저는 아직 못봤지만.


 여기에서 공부할 때도 유학생들 모임에서 그런 집안 친구들 많았어요.

 유학할 때 저도 몇 번 고백 받아봤어요. 다들 뭐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의 애들요.

 일본이나 유럽애들 같은 다른 외국애들한테도 몇 번 받아봤고..


 그런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거지일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저 하나만 품어 준 그 여자를,

어떻게 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배신을 하겠습니까.

 아직도 부유한 정도는 아니어서 유학생활 내내 일도 하고 돈 정말 아껴썼어요.

 기한 지난 폐기처분 전 바게트빵 싸게 사서 끓인 우유에 불려서 배채웠어요.

 레바논출신 애랑 우범지대 같은 곳에 방2칸짜리 렌트해서 돈 아끼며 지냈어요.

 겨울에 전기장판 하나로 버텼고 여름엔 주워 온 선풍기.

 먹을 거 없어서 쥐도 안와요. ㅎㅎ


 그런데 돈 많은 집안 애들이 비싼 옷 쇼핑하러 다니고 좋은 차 구입해서 놀러다니고 파티하고, 대기업 누구 딸, 어느 병원장 딸 이런 애들이 수두룩한데 걔네 중 몇몇이 호감 비치면서 따라다니면 여러분들은 어떨 것 같은가요?

 전유성씨 말씀대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편안해지는 거 한순간이에요.

 


 그런데 그 여자분들...

 제가 만약 죽을 병에 걸리거나 위험한 순간에 처한다면 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까요?

 그 친구들에 대해선 몰라도 제 여친에 대해선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딴맘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돈은 정말 사람을 편하게 해주더군요. 많은 것을 해결해주고.

 그런데 단지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일뿐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돈은 진짜사랑과 타협하거나 비교하기에는 성질 자체가 달라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단지 사랑을 해치지 않을만큼 최소한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한처럼 맺혔던 돈에 대한 집착을 버렸어요.

 


 이제 한국에 들어가든, 미국에 불러들이든 제 남은 인생 그녀를 위해 희생하려구요.

 그녀가 제게 모든 걸 주었듯 이젠 제가 그녀를 보호해주려구요.

 

 

 평생 한 여자만을 위해 살 겁니다.

 죽을 때까지 제 눈 속엔 그녀 밖에 없을 거예요.

 여자한텐 20대가 인생의 절반이라고 하죠?

 그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20대를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을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려 5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외국에 보내놓고 흔들리지 않고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ㅠㅠ 제가 유학 중에 좋은 배경 가진 여자 만나서 연락 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제 심장을 누군가에게 꺼내 맡겨야 한다면 그녀에게 맡길 겁니다.

 죽을 위험에 처해도 저를 위해 희생할 여자라는 걸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고보니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네요.
 첫번째 이유는, 그녀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어서입니다.
 제가 특별히 화나게 했던 기억도 없지만 다른 일에도 화를 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언젠가 집요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냥 단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자기를 괴롭히려는 의도로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이 답답해서 제가 화나진 않았었냐고 되물었던 사람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제가 화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제게 화를 내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제게 잘못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녀가 제 앞에서 제게 화를 내고 있다는 그 현실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안심할 것입니다.

 화를 내건 어떻건 일단은 제 앞에 있어줬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돈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좋은 요리 먹으러 다니고, 좋은 옷 쇼핑하러 다니고, 비싼 선물 사주고, 기념일마다 몇 만원 하는 선물바구니와 이벤트 하는 거...
 돈만 있으면 어느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해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없어서 눈물 흘리며 미안해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을 위해 자기 수명도 떼어 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제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100을 가졌다면 100 모두 내어주고도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해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살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평생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희영아..
 나 약속 지켰다. 절대 유학 가서 다른 여자 내 가슴에 담지 않겠다고 너한테 맹세한 약속.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거야.

 


 나 너한테 붕어빵이랑 떡볶이랑 캔커피 밖에 못사주고 언제나 버스 타고 데이트 하고,

 너한테 FI*A 운동화 사주려고 했을 때 네가 매장에서 도망나가서 대로변의 잡브랜드 1만원짜리 운동화 골라 신고 나 만날 때마다 그것만 신고 나오고...

 나 정말 거지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인생 막막했는데 네가 나 품어줘서 나 유학 갈 꿈도 가질 수 있었어.

 유학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게 되어도 비웃지 않고 기쁘게 환영해 줄 네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난 돌아갈 곳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

 너 아니었으면 아마 꿈도 잃어버리고 한국에서 대학중퇴에 하루하루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내가 언제든 돌아갈 집 같은 네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안심하고 시도할 거야.

 

 

 네가 전에 보낸 편지에

 "자기가 너무 잘나버려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더이상 없어. 어쩌지? 자기가 그렇게 커져가고 멋있게 변해가는 동안 난 7년 동안 더 늙었고 더 무식해졌고 더 초라해졌네..

 그런 자기 옆에 이런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기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 그러니까..

 정말정말 나보다 더 자기 마음 안에 들어오는 여자를 찾게 되면 그때 나한테 꼭 말해줘.

 내가 봤을 때 좋은 여자면 안심하고 자기 보내 줄 수 있을 거야.

 난 괜찮으니까 자기는 자기가 더 멋지게 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해.

 대신 다음 생이 또 있다면 그땐 꼭 날 선택해줘야해.

 그땐 나도 부잣집에 똑똑한 여자로 태어나서 자기한테 어울릴만한 여자로 태어날 테니깐."

 

 

 희영아..

 나.. 네가 보낸 그 편지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넌 모를거야.

 지금 이 글 쓰면서도 눈물이 흘러서 모니터가 안보여..

 내가 널 두고 어느 여잘 사랑할 수가 있겠어..

 너처럼 좋은 여자는 내가 천번을 다시 태어나도 아마 만날 수 없을 거야.

 네가 나한테 안어울릴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나 내가 배운 공부 다 버리고 붕어빵장수 아저씨로 살 수도 있어.

 내가 익힌 것들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 거라면 말이야.

 


 내가 죽어서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 내 인생에 너를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딱 그것만 말씀드릴거야.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너로 인해서 꽃 피울 수 있었으니까.

 

 

 내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다면,

 지금의 나로 이렇게 키운 두번째 내 어미는 바로 너야.

 내게 아무 힘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 시기에 내 부모가 나를 키우셨고,

 그 두번째 시기에 네가 나를 키웠어.

 

 


 일시귀국일지 영구귀국일지 아직 결정짓지 못했지만

 한국 돌아가면 그때 처음으로 무릎 꿇고 네게 청혼할게.

 

 

 우리..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사랑 지켜왔잖아.

 우리 애들이 컸을 때

 이 글을 보여줄거야.

 그리고..

 

 아빠가 엄마한테 이런 무한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때 이미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였다고,

 엄마는 아무 것도 없는 아빠를 조건없이 품었고 

 그래서 아빠는 큰새가 될 수 있었다고,

 아빠가 할아버지할머니께 생명으로 진 빚이 있다면 

 엄마에겐 녹 슬어 버릴 뻔한 심장과 황폐해질 뻔한 영혼의 빚을 졌기 때문에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에게 빚을 진 셈이라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영원히 빚을 갚는 심정으로 엄마를 사랑할 거라고.

 그게 내가 너희들보다 엄마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니까

 너희들이 이해하라고 

 그렇게 말을 할 거야.

 

 

 사랑한다.

 영원히..

 

 

 

...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그것은

평화요
안식이요
이 세상의 마지막이요
처음이다.


-정호승의 《연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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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블랭크

순진함과 순수함의 차이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잔 두 개가 있습니다.
한 잔에는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고,
다른 한 잔은 비워져 있습니다.

전자는 "순수" 라는 것이요,
후자는 "순진"이라는 것이죠.

순수라는 것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으니,
깨끗함 그 자체이고요.

순진은 비어 있으므로,
그안에 순수처럼 깨끗한 물이 담길 수도 있고,
더러운 물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누군가가
"순수"와 "순진"의 차이를 묻더군요.

순수의 사전적 의미는
"잡것의 섞임이 없는 것",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진"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꾸밈이 없이 순박하고 참되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 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순진하다" 라는 말은
어리석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반면 "순수하다" 라는 말은
자신의 소신이 있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이며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순진" 이란 말은
어릴 때만 간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순진하다면
세상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반면 순수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순수한 사람이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거짓이 없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집니다.
순수한 사람은 주관이 뚜렷합니다.
순수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겸손의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남의 잘못은 용서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합니다.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습관을 가지려 노력하면
순수해질 수 있습니다.

진정 순수해
누가 봐도 아름다워서 나를 닮고 싶어하는
사람 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누가 봐도 부담이 없는,
순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글 중에서-

Posted by 빈블랭크

삼양라면의 숨겨진 일화와 나의 프랑스 유학시절(펌)


벌써 2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어느 대학도시의 기숙사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한 십여명 있었습니다.

낯설은 이국 생활이라 당연히 고국의 음식이 그리웠지요.

당시만 해도 한국 음식점이 주변에 없었고

어쩌다 명절때나 부모님들께서 비싼 돈 들여 보내주시는 밑반찬이라야

받아보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라면이라도 마음껏 먹어보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었지요.

프랑스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식품점에서 라면을 팔기는 했는데

홍콩인지 싱가포르에서 만들어서 "출전일정" 일본상표를 붙인 조잡한 제품이었고,

첨부된 중국식 돼지고기 맛 스프가루를 타서 요리를 하면

정말 웬만큼 비위가 좋지 못한 사람들은 그 느끼함에 다 토해버릴 정도.

그래서 저희들은 스프가루 넣는 대신 소금, 양파, 고추가루로 맛을 내고는 했지요.

우리나라 우리맛 라면을 너무나 먹고 싶은 마음에 하루는 꾀를 내었습니다.

기숙사 외국 학생들이 모두 삼백여명쯤 되었는데

학교 식당에서 모두에게 대한민국 라면파티를 멋지게 열어주자고,

그래서 우리나라 우리맛 라면의 진수를 전 세계에 보여주자고.

그런 내용을 써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삼양라면 사장님께

다만 본사가 당시 서울 종로 청진동에 있었다는 것만 알고서

도와주십사 라는 편지를 진담반 장난반 올렸습니다.

물론 무모하고 황당한 요청임을 잘 알기에

저희는 삼양라면에 대해 답신 조차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파리 오를리 공항 세관에서 제게 소환장이 날아왔습니다.

외국산 식료품이 무려 2 큐빅톤이나 제 앞으로 왔는데,

도대체 학생의 신분이라면서 혹시 밀수꾼이냐 아니냐 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날 밤차를 타고 파리에 상경,

새벽에 오를리 공항에 가서 여차저차 사정을 말하고 물건을 찾아왔습니다.

세관원들은 거의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짓더군요.

말이 2 큐빅톤이지 작은 봉고차에 가득차는 엄청난 물량이,

당시 돈으로도 수백만원 넘는 특급 항공운임표를 붙인채 제 앞에 쌓인 모습,

라면 상자의 산더미는 제 생전 처음 보는 장관이었지요.

마치 오르기 어려운 높은 산을 정복했노라는 성취의 뿌듯함에 앞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일개 학생의 편지 글만을 믿고,

라면 백여상자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운임까지 지불하여 특급우편으로 보내주신

삼양라면 사장님의 마음 쓰심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고 말더군요...

과연 어떤 분이실까.

뵙고 싶었습니다.

감사하고 황송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존경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희의 대한민국 라면파티는 대성황으로 끝났고요.

외국학생들에게는 "짜짜로니" 였던가요, 짜장면 류가 대인기를 끌었지요.

작은 대학도시였지만, 라면파티 한 번으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년도 더 지나고...

국민기업 삼양라면이 처했던 어려움도 그저 남의 일인냥 지나쳐버리고,

이런 저런 핑계로 삼양라면 사장님께 그 흔한 그림엽서 한 장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요.

오늘 우리나라의 위기를 맞았지만,

삼양라면 사장님의 신념과 배려의 마음을 떠올리며 저희의 희망으로 삼습니다.

삼양라면! 사랑합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

Posted by 빈블랭크

만약 오늘이 별볼일 없는 하루였다고 느꼈던 당신이라도 이것을 읽으면 현실이 다르게 보일지도...


만약, 현재의 인종통계비율을 정확히 포함해, 전세계를 인구 100명의 마을로 축소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마을에는..


57명의 아시아인,
21명의 유럽인,
14명의 남북아메리카인,
8명의 아프리카인이 있습니다..

52명이 여성이고,
48명이 남성입니다..

70명이 유색인이고,
30명이 백인,

70명이 크리스트교이외의 사람이고,
30명이 크리스트교입니다..

89명이 이성애자이고,
11명이 동성애자,

6명이 전세계 부의 59%를 소유하고 있고, 이 6명 전부가 미국에 국적

80명은 표준이하의 거주환경에 살고,

70명은 글을 읽지못합니다.

50명은 영양실조에 고통받고 있고,

1명이 빈사 상태

1명이 지금, 태어나려고 합니다..

1명(겨우 한명)은 대학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리고 1명만이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축소된 전체도에서 우리들의 세계를 본다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기위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또, 다음과 같은 시점에서도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만약 당신이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아프지않고 건강하다고 느낄수 있었다면...

당신은 이번 주 살아 남을 수 없을 100만명의 사람보다 행복한 것 입니다.


만약 당신이 전쟁의 위험, 투옥되는 고독, 감옥살이, 혹은 굶주림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세계의 5억의 사람들보다 행복한 것 입니다.


만약 당신이 끈질기게 고통을 느끼거나, 체포, 고문 또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않고, 교회의 미사에 갈수 있다면...

당신은 세계의 30억의 사람보다 행복한 것 입니다.


만약 냉장고에 먹을것이 있고, 입을 옷이 있고, 머리 위에 지붕이 있고, 잘 장소가 있다면...

당신은 세계의 75%의 사람들보다 행복한 것 입니다.


만약 은행에 저금한 돈이 있고, 지갑에 돈이 있고, 집의 어딘가에 잔돈이 들어있는 동전 지갑이 있다면...

당신은 이 세계에서 가장 유복한 상위 8% 중 한사람입니다.


만약 당신의 부모가 다 건강하시고, 그리고 두 분 다 아직 함께이시라면...

그것은 매우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만약 이 메일을 읽는 것이 가능하다면 당신은 이 순간 2배의 행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생각해 이것을 전해준 누군가가 있고, 거기다 당신은 모든 글을 읽을 수 없는 세계의 20억의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모든 일은 나에게로 돌아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에 집착하지 말고, 즐겁게 일합시다.

전에 한번도 부드럽게 대한적 없는 것 같이, 사람을 사랑합시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이, 자유롭게 춤 춥시다.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이, 펀안히 노래합시다.

마치 이곳이 지상의 천국인것 같이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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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블랭크

매일 아침 당신에게 86,400원을 입금해주는 은행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계좌는 그러나 당일이 지나면 잔액이 남지 않습니다.
매일 저녁 당신이 그 계좌에서 쓰지 못하고 남은 잔액은 그냥 지워져 버리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그날 모두 인출해야죠!!

시간은 우리에게 마치 이런 은행과도 같습니다.
매일 아침 86,400초를 우리는 부여받고, 매일 밤 우리가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진 시간은 그냥 없어져 버릴 뿐이죠.

잔액은 없습니다. 더 많이 사용할 수도 없어요.
매일 아침 은행은 당신에게 새로운 돈을 넣어주죠.
매일 밤 그날의 남은 돈은 남김없이 불살라집니다.

그날의 돈을 사용하지 못했다면, 손해는 오로지 당신이 보게 되는 거죠.
돌아갈 수도 없고, 내일로 연장 시킬 수도 없습니다.
단지 오늘 현재의 잔고를 갖고 살아갈 뿐입니다.

건강과 행복과 성공을 위해 최대한 사용할 수 있을만큼 뽑아쓰십시오!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하루는 최선을 다해 보내야 합니다.

1년의 가치를 알고 싶으시다면,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에게 물어보세요.

한달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미숙아를 낳은 어머니를 찾아가세요.

한주의 가치는 신문 편집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한 시간의 가치가 궁금하면,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일분의 가치는 열차를 놓친 사람에게, 일초의 가치는 아찔한 사고를 순간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천분의 일초의 소중함은, 아깝게 은메달에 머문 그 육상선수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이 가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또한 당신에게 너무나 특별한, 그래서 시간을 투자할 만큼 그렇게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공유 했기에 그 순간은 더욱 소중합니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이야말로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그래서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부릅니다.
Posted by 빈블랭크

[보통사람] 전력으로 달려서 피한다

[아케이드 게이머] 가드를 굳힌다

[우메하라(梅原)] 끌여들여서 승룡

[서드 계] 블로킹

[ZERO3 계] 승룡권의 무적시간을 이용하여 빠져 나간다

[사무라이 오타쿠] 무의 경지

[KOF 오타쿠] AB를 동시에 눌러서 앞구르기

[VS계 오타쿠] 교대

[슈팅 오타쿠] 폭탄 사용

[MJF 오타쿠] 우선 자기패 3개 떨어트리기

[null 게이머] 컨티뉴

[MOW 오타쿠] 저스트 디펜스로 체력 회복

[식신의 성 오타쿠] 아슬아슬하게 접근해서 8배

[미소녀 게임 오타쿠] 일단 부딪혀 본다

[스트리트 파이터 II 오타쿠] 차를 부셔서 보너스를 탄다

[퍼즐게임 오타쿠] 같은 색의 차를 쌓아서 소거

[퀘이크 오타쿠] 로켓점프로 넘어간다

[언토04 오타쿠] 스페이스를 두번누른다

[카스 오타쿠] 차? 그게 뭐야?

[트라이브스 오타쿠] 접근해서 자기가 뺏어 탄다

[NS 오타쿠] 커맨더에게 자신도 차를 지급해달라고 조른다

[하프2 오타쿠] 중력건으로 차를 날린다

[키미노조 오타쿠] 스페셜 팬 디스크를 구입한다

[이글루 괴인]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라는 글을 쓴다

[DC(디씨 인사이드)오타쿠] 일단 -------------(절취선)-------------- 을 깐다

[카논 오타쿠] 어짜피 기적이 일어나니 상관없다

[클라나드 오타쿠] 재플레이를 두번 더한다

[AIR 오타쿠] (차에 치이면서) 골-

[DOOM 오타쿠] 부딪히기 전에 iddqd를 외친다.

[포트리스 오타쿠] 실드 아이템 사용.

[스타크 오타쿠] 디스한다.

[워크 오타쿠] 타운포탈 사용.

[카트레이더 오타쿠] 아이템사용

[마리오 오타쿠] 차를 밟고 보너스

[젯셋 오타쿠] 점프로 피한 후 차 뒤에 붙어가면 시간단축

[월희 오타쿠] 공상구현화 or 차를 17분할

[페이트 오타쿠] 서번트를 소환한다 or 영주를 쓴다

[KOF 99-2001 오타쿠] 스트라이커 소환

[길티기어 오타쿠] 직전가드 후 K로 시작하는 연속기.

[FF 오타쿠] 어짜피 만나면 전투페이즈로 돌입되니 상관없다.

[DC 햏자] 셀프샷을 찍어 올린다. 스너프갤에.

[악파 오타쿠] 퍼펙트 월드를 발동시킨다

[빅릭스 오타쿠] 어차피 그냥 통과하니 무시한다.

[아더스 퀘스트 오타쿠] 백스텝을 하면서 미끄러지듯이 화살을 쏜다

[제다이 오타쿠] 포스를 발동한다

[배틀테크 오타쿠] 부딪혀보라지 한번

[고에몽 오타쿠] 자동차는 곧 에너지다.

[마법소녀 오타쿠] 일단 변신한다.(변신하는 동안에는 시간이 정지한다) 변신후 고정대사를 외치고 격파

[밍키 오타쿠] 그냥 치여 죽는다. 마지막화니까.

[가오가이가 오타쿠] 어디선가 날라온 신칸센이 차를 튕겨낸다

[이니셜D 오타쿠] 1cm 드리프트.

[데스노트 오타쿠] 머리에 총맞아도 멀쩡한데 하물며 자동차이랴.

[변**] 파이어뱃으로 차를 녹인다

[임**] 차를 락다운시킨다.

[워3 휴먼] 스톰볼트를 날린다 or 아~바타~

[베***] 차에 치인후 치료비를 고향에 송금한다

[나이트엘프] 인탱글린 루트

[마쿠노우치 잇뽀] 이것도 훈련의 일환이다!

[싱하형] 이 차 몬 새♡ 10초내로 굴다리로 튀어와라

[G건담 오타쿠] 오른손이 불탄다.

[사치코님] 차선이 삐뚤어져 있어요.

[켄시로] 전룡호흡법

[대번장 오타쿠] 휠체어녀를 부대에 넣고 전투 시작

[문**] 7옥타브로 차를 산산히 분해한다

[요시노] 선수필승!

[이**] 교통체계를 개편해버린다.

[버파오타쿠] 가드시 잡기확정일까 생각한다.

[워해머 오타쿠] 드레드넛 파워피스트로 차를 박살낸다

[에바 오타쿠] 도망치면 안돼 도망치면 안돼 도망치면 안돼 도망치면 안돼 도망치면 안돼 도망치면 안돼 도망치면 안돼

[GTA 오타쿠] 일단 가로막고 본다.

[마비노기 오타쿠]...달려오면 평타로.

[마비노기 오타쿠2] 맞아죽은후 나오부활로 일어나 스메쉬를 날린다.

[동방 오타쿠] 일단 슬로우 모드부터 쓰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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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아웃 오타쿠] 즉시 무기 칸을 클릭해서 턴 타임 전투 모드로 바꾸고 자리를 피한뒤 End Combat 메뉴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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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2 오타쿠] 차와 부딛히는 순간 일기토를 신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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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릭스]운전수로 전이한다.
Posted by 빈블랭크

*아버지를 팝니다*

어느 날 신문광고 아버지를 판다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그 광고에는 아버지는 지금 노령이고 몸이 편치 않아서

일금 일 십 만원이면 아버지를 팔겠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광고를 바라보고 혀를 끌 끌차며

"세상이 말세다" 라고 하는 이도 있었고

다 늙은 할아버지를 누가 사겠냐고 숙덕거렸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부모 없는 설움을 지녔던 한 부부가

새벽같이 그곳을 달려갔습니다.

대문 앞에서 몸매를 가다듬은 부부는 심호흡을 머금고

초인종을 누릅니다.

넓은 정원에서 꽃밭에 물을 주고 있던 할아버지가

대문을 열고서는 어떻게 왔냐고 물었습니다.



부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신문광고를 보고

달려왔다고 말씀을 드리자 할아버지가 웃음을 지으며

집안으로 안내를 합니다.

그곳은 아주 부잣집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파시겠다는 광고를 보고 왔습니다."

젊은 부부는 또박또박 뚜렷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할아버지는 빙긋 웃음을 지으시더니

"내가 잘 아는 할아버지인데 그 할아버지 몸이

좋지 않아요. 그런 할아버지를 왜 사려고..."

젊은 부부는 모두가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고아처럼 살다 결혼했기 때문에 부모 없는 설움이

늘 가슴에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아프지나 집안이 어렵지 않은 가정이라면

누가 아버지를 팔겠다고 광고를 내겠느냐고....

비록 넉넉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작은 가운데서도 아기자기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도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싶어서 달려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들 부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달라고 합니다.

젊은 부부는 정성스럽게 가지런히 담은

흰 봉투하나를 할아버지에게 내어놓습니다.

할아버지는 돈 봉투를 받아들고 나서

그 할아버지도 정리할 것이 있어서 그러니

일주일 후에 다시 이곳을 오라고 하였습니다.



일주일 후 젊은 부부는 다시금 그 집을 찾았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어서 오게나 나의 아들과 며느리야"하시면서

"사실 내가 너희에게 팔렸으니

응당 내가 너희들을 따라가야 하겠지만

너희가 이 집으로 식구를 데려 오느라"고 하십니다.



깜짝 놀란 부부는 양자를 데려오면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이

돈만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젊은 부부는 "저희에게 아버지로 팔렸으면

저희를 따라 가셔야지요, 비록 저희들은 넉넉하게

살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사랑이 있답니다."라고

고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진정 흐뭇한 마음으로

"너희는 참으로 착한 사람들이다.

너희가 부모를 섬기러 왔으니 진정 내 아들이다.

그러하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곧 너희 것이며

너희는 나로 인해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운 마음 때문에

복을 불러들인 것이다."라고 하시며 기뻐하시며

자식들의 절을 받았습니다.
Posted by 빈블랭크

두 사람이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 문제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사람은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래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빰을 때렸다."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말없이 걸었습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한 두 친구는
그곳에서 목욕을 하기로 했습니다.

뺨을 맞았던 사람이
목욕을 하러 들어가다 늪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때 뺨을 때렸던 친구가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늪에서 빠져 나왔을 때
이번에는 돌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를 때렸고 또한 구해준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 다가 적었는데,
왜 너를 구해준 후에는 돌에 다가 적었지?"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
우리는 모래에 그 사실을 적어야 해.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버릴수 있도록...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였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돌에 기록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테니까."

우리 속담에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데
돌아보면 우리는
그것을 거꾸로 할 때가 많습니다.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은혜는
물에 새겨 금방 잊어버리고
마음에서 버려야 할 원수는
돌에 새겨 두고두고 기억하는 것이지요.

은혜를 마음에 새기면 고마움이 남아
누구를 만나도 무슨 일을
만나도 즐겁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원수를 새기고 나면
그것은 괴로움이 되어 마음속에
쓴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여서
은혜를 새기든 원수를
새기든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한번 내 마음을 조용히 돌아봅시다.
지금 내 마음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돌아봅시다.

내 마음 가득히 원수를 새기고
쓴 뿌리를 키우고 있는것은 아닌지,

은혜를 새기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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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블랭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