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혼으로 깨어진 관계, 퇴직, 실직 등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실감을 경험한다. 이런 깨진 마음, 감정의 앙금을 제대로 정리한다면 더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더 섬세하게 다른 감정들도 느낄 수 있다. 상실감 치유 연구소에서 말하는 상실감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아보자.

 

1.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인정하라.
-'슬퍼하지 말라, 참고 견뎌라' 등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감정을 내보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배워 왔다. 그러나 상실에 대해 슬픔을 느끼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감정에 맞서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2.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아라.
-상실감을 준 사건이나 대상과의 관계를 차분히 되돌아보는 것은 슬픔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의 시작이다. 비슷한 상실감을 경험한 친구나 가족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슬프다'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감정의 앙금을 풀어 버린다.

 

3.일시적 해소법은 잊어라.
-우리는 흔히 음식, 알코올, 쇼핑 등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상실로 인한 나쁜 감정을 덮어 버리려 한다. 그러나 이는 잠시 기억에서 지워 버려 극복했다는 환상을 만들 뿐, 잘못하면 더 혼란스러워진다.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해 왔던 해소법을 바꾼다.

4.잘못을 인정하라.
-가령 남의 지갑에서 몰래 돈을 꺼내 갔다거나 병문안을 못 가 미안하다는 등 누군가에게 입혔던 상처와 불쾌감을 준 행동을 적어 보라. 정리되지 않은 감정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도 있다. 다른 사람의 탓이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지금 겪고 있는 감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라.

 

5.용서하라.
-상처를 받은 아픔에 계속 원한을 품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정작 그로 인해 상처받는 것은 자신이다.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먼저 용서하라.

6.나에게 편지를 쓰라.
-꼭 해야만 하던 사과와 용서, 알아주었으면 하는 자신의 감정을 편지로 쓰면서 풀지 못했던 감정을 소통하며 정리하는 의식을 치르라. 그 편지를 믿을 만한 친구 앞이나 혼자 조용히 읽는다. 정리는 기억을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정리함으로 고통스러운 상실감을 지워 버리는 것이다.

'심심이 > 킬링 타임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즐거운 일상을 위한 처방전  (0) 2012.01.05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6가지 방법  (0) 2012.01.05
5달러 짜리 자전거  (0) 2012.01.05
집착과 사랑  (0) 2012.01.05
남모르게 흘린 땀과 눈물  (0) 2012.01.05
Posted by 빈블랭크


외국의 어느 자전거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저마다 좋은 자전거를 적당한 값에 사기위해
분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주고객인 그 경매장 맨 앞자리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고,
소년의 손에는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소년은 아침 일찍 나온 듯 초조한 얼굴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었고, 소년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5달러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곧 옆에서 누군가 "20달러!" 하고 외쳤고,
그 20달러를 부른 사람에게 첫번째 자전거는 낙찰되었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달러는 어림도 없이 15달러나 20달러,
어떤 것은 그 이상의 가격에 팔려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경매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슬쩍 말했습니다.

"꼬마야, 자전거를 사고 싶거든 20달러나 30달러쯤 값을 부르거라."

"하지만 아저씨, 제가 가진 돈이라곤 전부 이것 뿐이에요."

"그 돈으론 절대로 자전거를 살 수 없단다. 가서 부모님께 돈을 더 달라고 하려무나."

"안돼요. 우리 아빤 실직당했고, 엄만 아파서 돈을 보태 주실 수가 없어요.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꼭 자전거를 사가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소년은 아쉬운 듯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경매는 계속되었고 소년은 자전거를 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일 먼저 5달러를 외쳤고,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소년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 날의 마지막 자전거..

이 자전거는 그 날 나온 상품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경매를 고대했었습니다.

"자, 최종 경매에 들어갑니다. 이 제품을 사실 분은 값을 불러 주십시오."

경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소년은 풀죽은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역시 손을 들고 5달러를 외쳤습니다.

아주 힘없고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순간 경매가 모두 끝난 듯 경매장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다른 값을 부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5달러요. 더 없습니까? 다섯을 셀 동안 아무도 없으면 이 자전거는 어린 신사의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팔짱을 낀 채 경매사와 소년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5… 4… 3… 2… 1."

"와~아!"

마침내 소년에게 자전거가 낙찰되었다는 경매사의 말이 떨어졌고,
소년은 손에 쥔 꼬깃꼬깃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경매사 앞에 내 놓았습니다.

순간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소년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이 자전거를 받게 된 동생은 형의 마음을 알았었는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매일 자전거를 탔다고 합니다.

이 동생이 바로 사이클을 타고 알프스산맥과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프랑스 도로를 일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서 최초로 6연패를 달성한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 입니다.

암투병을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선 인간승리의 표본 랜스 암스트롱..

++++++++++++++++++++++++++++++++++++++++++++++++

1993   세계 사이클 선수권 대회 우승
1999   제86회 투르드프랑스 사이클대회 우승
2000   제87회 투르드프랑스 사이클대회 우승
2001   제88회 투르드프랑스 사이클대회 우승
2002   제89회 투르드프랑스 사이클대회 우승
2003   제90회 투르드프랑스 사이클대회 우승
2004   제91회 투르드프랑스 사이클대회 우승
2005   제92회 투르드프랑스 사이클대회 우승 (대회 7연패)

++++++++++++++++++++++++++++++++++++++++++++++++
Posted by 빈블랭크

연인이 싸웠을 때.

집착하는 이는 전화를 받을 때까지 해댑니다.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게 뭐냐고 하구요.


사랑하는 이는 전화를 걸기 까지 생각을 합니다.

대체.. 어떻게 나의 사과를 전할까 하구요.


 


 

연인이 아플때.

 

집착하는 이는 주위가 떠들석 하도록

약 사다 주고 병원 데려가고 나서는 크게 생색을 내지만

 

사랑하는 이는 주위가 방해하지 않도록

말없이 챙겨주고 오로지 상대가 낫기만을 기원하지요.



 

집착하는 이는 자신이 충분히 해 준다고 생각하지만

 

사랑하는 이는 자신이 아직도 멀었다며 반성합니다.


 

집착하는 이는 다른 이성과의 만남을 가지는 연인을 통제하지만


사랑하는 이는 다른 이성과의 만남을 가지는 스스로를 통제합니다.


 

집착하는 이는 그 연인의 빛이 바래면 싫증내지만

사랑하는 이는 그 연인이 빛을 바래는 순간부터 빛이 됩니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생각하나요?

집착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건 아닌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이를 자신만 바라보도록 옭아 매는 건 집착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조용히 지켜봐 주세요.

억지로 두 사람을 옭아 매려 하지말고..

자연스레 두 사람이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세요.


 

그게 진짜 사랑이니까요.

'심심이 > 킬링 타임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실감에서 벗어나는 6가지 방법  (0) 2012.01.05
5달러 짜리 자전거  (0) 2012.01.05
남모르게 흘린 땀과 눈물  (0) 2012.01.05
'평화'라는 단어  (0) 2012.01.05
엄마와 아들의 일기..  (0) 2012.01.05
Posted by 빈블랭크

남모르게 흘린 땀과 눈물


"얼마 전에 맥이 그러더군.
'꿈을 이룬 사람들의 웃는 얼굴,
그 주름살에 숨어 있는 땀과 눈물의 흔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지. 맥은 이 말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더군.
"하나는 '그 사람들이 지금은 웃고 있어서,
편안하게 그 자리에 오른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그들이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은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거야. 또 하나는
'비록 그들이 꿈을 이루어서 겉보기에는 행복해 보이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남모를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다'고 말이야."


- 스탠 톨러의《행운의 절반 친구》중에서 -


* 국화밭을 걸을 때, 사람들은
아름다운 국화 꽃송이만 바라보기 쉽습니다.
그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어댄 소쩍새의 울음소리와
밤새 내린 차갑고 모진 무서리를 끝내 지나치기 쉽습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꿈, 그 꿈을 일궈가는 웃음 뒤에는
누군가 아무도 모르게 흘린 땀과 눈물이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진정한 사랑과
감사를 나눌 수 있습니다.  

'심심이 > 킬링 타임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5달러 짜리 자전거  (0) 2012.01.05
집착과 사랑  (0) 2012.01.05
'평화'라는 단어  (0) 2012.01.05
엄마와 아들의 일기..  (0) 2012.01.05
신성한 양심  (0) 2012.01.04
Posted by 빈블랭크

인류가 만들어낸 말 중에서
'평화'라는 단어만큼
차원 높은 단어도 없고 그 단어만큼
몸살을 앓고 있는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인간의 의식상태가
바로 평화의 상태가 아닐까요?

그럼에도 인류역사상 수많은 종교와 국가와 민족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키고 평화를 짓밟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평화란 단어는 오염이 될 대로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제 다시 그 단어의 순수한 에너지를 모든 사람의
가슴에서 살아나게 해야할 때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뿌리가 지구이고
우리가 지구인임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심이 > 킬링 타임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착과 사랑  (0) 2012.01.05
남모르게 흘린 땀과 눈물  (0) 2012.01.05
엄마와 아들의 일기..  (0) 2012.01.05
신성한 양심  (0) 2012.01.04
할머니 이야기  (0) 2012.01.03
Posted by 빈블랭크

엄마의 일기

눈물을 흘리며..
어두운 밤 눈가에 흘리는 눈물을 누군가 볼까봐
연신 주의를 살폈다.
내일은 내 사랑하는 아들 현이가 소풍을 가는 날이다.
주인집 아줌마에게 사정을 해서 만원을 빌렸다.
김밥 재료를 사고 3000원이 남았다.
아들은 내일도 웃으면서 돈을 받지 않을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벌써 애는 일어나
나를 멀그러니 바라보고 있었다.
김밥을 싸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나온다.
혹시나 볼까봐 뒤로 앉았더니
애는 뭘 아는지 밖으로 나간다.
벌써 다 큰걸까?
남들처럼 잘먹였으면 키도 많이 컸을텐데
올 겨울이 걱정이다.
주인집에선 나가길 원하는 눈치인데..
내일은 파출부 자리나 알아봐야겠다.


아들의 일기


엄만 오늘도 우셨다.
내일은 말해야 할텐데 학교 등록금을 안냈는지..
벌써 3개월이 지났는데
이제 반년만 지나면 졸업인데
자꾸 가슴 아픈게 심해진다.
양호실에 또 가서 진통제를 받아야 하나..
엄만 많이 힘들어 하시는 것 같은데..
신문배달도 요즘 들어서 하기가 힘들어진다.
뛸 수가 없으니..



엄마의 일기

오늘도 아이는 도시락을 조금 남겼다.
매일 김치만 싸주니 오늘 저녁은 또 뭘먹이나?



아들의 일기

어제 저녁에도 엄마에게 등록금 얘길 못했다.
간장에 밥비며 먹는 내 모습에 어머니가 서럽게 울었다.
내일은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자퇴를 내야겠다.
돈을 벌어 어머니를 내가 모시는게 날것 같애!
아버지 제사날이 내일인데 어머니는 알고 계실까?



엄마의 일기

아이가 잠을 못자는  것 같다.
어디가 아픈건 아닌지?



아들의 일기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학교를 그만 두었다.
내일은 신문보급소에 가서 얘기하고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
어젯밤에 한숨도 못잤다.
몹시 아팠지만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물도 못마셨는데
밥을 너무 못먹어서 그런가 간장만 먹으면 설사를 하였다..
1200만원에 내 장기를 사준다니..
엄마에게는 그냥 주었다고 말해야겠다.
좀 더 살고 싶지만 엄만 너무 힘들어 하신다.
내일은 아버지 산소에나 가봐야겠다.



엄마의 일기

아들에게 고기를 사주려고 머리를 잘랐다.
보자기를 쓰고 있는데 아들이 그냥 울고만 있다.
고기는 먹지도 않고..



아들의 일기

오늘 돈을 받았다.
엄만 길거리에 주었다고 하면 반드시
돌려 드리라고 하실건데..
당분간 내가 갖고 있어야겠다.
방학을 맞아 친구네 놀러 간다고 하니
엄만 믿으신 것 같다.
편지를 쓰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엄마의 일기

아들이 방학을 맞아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단다!
난 흔쾌히 허락했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것보단
잘먹을수 있겠지..
그런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들을 다시는 못볼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에이.. 괜한 걱정이겠지..



아들의 마지막 편지

어머니께
정말 사랑해요
슬퍼하지 마시고, 진지 꼭챙겨 드세요..
그냥 저멀리 여행갔다고 생각하시고..
그냥 엄마에게 효도 많이 했으니까
아버지에게도 해야죠..
아버지도 반가워 하실꺼예요..
눈물은 제가 오늘 다흘릴테니까요..
어머니 이젠 눈물 흘리지 마세요..
저 백혈병이래요.
수술해도 안된데요..
어머니 저 잊지 마시고요,
다음 세상에도 제 어머니 되어 주세요..
사랑해요.. 돈은 제가 선한일 해서 번거니까
마음껏 쓰시고여..
먼저가서 죄송해요..
참 저 생각 나시면 김밥일랑 만들어 두세요..
어느 집 보다 맛있어요.
울지 마시고요..
꼬옥 오래 사시고 오세요..
아들이..

'심심이 > 킬링 타임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모르게 흘린 땀과 눈물  (0) 2012.01.05
'평화'라는 단어  (0) 2012.01.05
신성한 양심  (0) 2012.01.04
할머니 이야기  (0) 2012.01.03
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0) 2012.01.03
Posted by 빈블랭크


신성한 양심은 우주의 마음입니다.
우주의 신성과 만난 사람은
참다운 사랑을 할 수 있고
참다운 덕을 배풀 수 있습니다.

양심이 바로 신성이며
그것이 바로 본성입니다.

이것을 만족시킬 때
인간은 완전한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주의 신성과 만나는 순간을
깨달음이라고 하고 구원, 성통이라 합니다.

인간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지만
개인의 행복은 소유욕을 만족하는데서 오고
전체의 행복은 양심을 회복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늘은 양심있는 자를 찾아 세워서
그 사람에게 하늘의 마음을 비춰 주고 사명을 줍니다.
사명을 받은 자에게 협조자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조화입니다.

'심심이 > 킬링 타임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화'라는 단어  (0) 2012.01.05
엄마와 아들의 일기..  (0) 2012.01.05
할머니 이야기  (0) 2012.01.03
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0) 2012.01.03
순진함과 순수함의 차이  (2) 2012.01.03
Posted by 빈블랭크

나를 철들게 한 나의 할머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아버지가 남기신 빚을 갚기 위해
서울로 떠나신 후, 다섯 살이던 저와 세 살이던 남동생은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손에 맡겨졌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기억나는 어린 시절이 있겠지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 할머니 손에 맡겨지고 1년이 지난,
여섯 살의 봄입니다. 불행히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
지금까지도 제 가슴 속에 아픈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날, 도시 생활을 하고 있던 친척들이
저와 제 동생 문제로 할머니 댁을 찾았습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와 친척들 간에 언성을 높이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안 된다는 말씀만 반복하셨고,
친척들은 사는 게 힘들어서 도와 줄 수 없다는 말만 거듭 했습니다.



큰아버지는 저와 제 동생에게 새 옷을 입혀 주고, 새 신을 신겨 주며,
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울먹이시던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아버지는 저희 남매 손을 이끌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친척들 누구하나 따라 나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다르셨습니다.
버선발로 뛰쳐나와 저희 남매를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안 된다. 절대 못 보낸다. 고아원에도, 아들 없는 집에도, 나는 못 보낸다.
죽은 내 아들 불쌍해서 이것들 못 보낸다.
니들 헌티 10원 한 푼 도와 달라구 안 헐라니까 보내지 마라.
그냥 내가 키우게 놔둬라.”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목 놓아 우셨습니다.



그날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제 남동생도 없었겠지요.
할머니의 눈물이 지금의 저희 남매를 있게 해 준 것입니다.
고아원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들 없는 집에 보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희 남매는 할머니께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것인데
그게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철이 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할머니는 친척들께 약속하신 대로 10원 한 푼 받지 않고
저희 남매를 기르셨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시며,
받아오신 품삯으로 생활을 꾸려가셨습니다.
할머니가 저희 남매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셔야 했는지,
스스로 얼마나 억척스러워지셔야 했는지,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습니다.



그저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새 옷 한 벌 없이 남의 옷만 얻어 입는 것이 불만이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학용품을 넉넉하게 쓰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마음 놓고 과자 한번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
소풍에 돈 한 푼 가져갈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
운동회 때 할머니랑 함께 달리는 것이 불만이었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나
불쌍한 아이 취급받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배부르게 먹이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새 옷 한 벌 사주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렸을지,
남의 집으로 옷을 얻으러 다니며 할머니가 얼마나 고개를 숙이셨을지,
넉넉하게 학용품을 사 주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어땠을지,
소풍간다고 김밥 한번 싸주지 못하고
용돈 한 푼 주지 못하는 그 마음이 어땠을지,
다른 아이들은 운동회 때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을
나이 드신 당신 몸으로 해 주시느라 얼마나 진땀을 빼셨을지,
어디서나 애비 에미 없다고 손가락질 받는 손자들을 보며
얼마나 가슴을 쓸어 내리셨을지,
그때는 철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그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더 불쌍하게 보여서
뭐 하나 얻으려고 애쓰는 할머니의 모습이 싫고 창피할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저희 남매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사셨습니다.
당신의 체면이나 얼굴을 모두 버리시고,
오로지 저희 남매를 위해 사셨습니다.
앉았다 하면 신세 한탄이 먼저 나오고,
불쌍한 손자들 얘기를 풀어 놓으며 눈물을 훔치시기 바빴지만,
할머니가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과자 한 봉지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이발소에서 공짜로 머리를 자를 수도 있었고,
새 연필 한 자루라도 얻어 쓸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철없는 남매를 기르시면서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누구보다 억척스럽고 강하셨지만,
또 누구보다 여리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남의 집으로 일을 가시는 날에는 새참으로 나온 빵을 드시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시는 분이셨고,
1주일에 한번 장으로 나물을 팔러 가시는 날에는
순대를 한 봉지씩 사다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동생과 제가 싸우면 뒤란에 있던 탱자나무 가지로 심하게 종아리를 치셨지만,
붉은 줄이 그어진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시며 금세 눈물을 훔치시는 분이셨고,
맛있는 과자를 마음껏 못 사줘 미안하다며 문주를 부쳐주시고,
개떡을 쪄주시고, 가마솥 누룽지에 설탕을 발라주시는 분이셨고,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에는 우산 대신 고추밭 씌우는 비닐로
온 몸을 둘러주시고 빨래집게로 여기저기 집어주시며,
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이 너는 우산도 없느냐고 놀리거든,
“우리 할머니가 이렇게 돌돌 싸매면 비가 한 방울도 못 들어와서
옷이 안 젖는다더라.
너도 니네 엄마한테 나처럼 해달라고 해봐.”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시던 분이셨습니다.



비록 가난해서 봄이면 나물을 뜯어다 장에 내 팔고,
여름이면 고기를 잡아다 어죽 집에 팔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따다 묵 집에 팔고,
겨울에는 손에 마늘 독이 베이도록 마늘을 까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와 함께 했던 유년의 그 시간들이
스물아홉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행복이라는 걸 몰라서 할머니 가슴을 많이도 아프게 했지요.
저는 가난이 싫었습니다. 억척스러운 할머니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반항적이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제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제 마음을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는 할머니가 미워서 버릇없이 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가 부끄럽다는 생각은 했으면서도,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불쌍하거나 안쓰럽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몰래 눈물을 훔쳐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할머니가 제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사춘기의 저를 이해 못했던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우리 남매가 아니었다면
혼자 편하게 사셨을 할머니가 손자들을 떠맡은 죄로
불쌍하게 사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철이 들 무렵에야 알았습니다.



저와 남동생은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각각 천안에 있는
상고와 예산에 있는 인문고등학교에 진학해 자취 생활을 했습니다.
저희 남매는 주말마다 할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내려갔는데,
그때마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그 안에 빵과 우유가 가득했습니다.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셨던 할머니가 새참으로 나온 빵과 우유를 드시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셔서 냉장고에 넣어놓으신 거였습니다.
남들 다 새참 먹을 때 같이 드시지 왜 이걸 냉장고에 넣어 놓으셨냐고,
유통기한 다 지나서 먹지도 못하는 데 왜 그러셨냐고 화를 내면,
“니덜이 목구멍에 걸려서 넘어가야 말이지.
니덜 오먼 줄라고 냉장고에다 느 놨는디, 날짜 지나서 못 먹으먼 워쩐다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번도 할머니를 가엾다고, 안쓰럽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제가,
냉장고에 가득하던 빵과 우유를 내다 버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데,
할머니가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제가 철이 들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자취하는 제게 김치와 쌀을 갖다 주시겠다고 올라오신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터미널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 찾아낸 할머니는 반갑게 제 손을 잡으시며
“아침 7시 차 타구 나왔더만, 10시두 안 돼 도착허더라.
한 3시간은 이러구 서 있은 모양이여.
기다리다 배고파서 나 먼저 짜장면 한 그릇 먹었다. 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또다시 가슴 한 구석이 아렸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께 화를 냈습니다.
“그러게 내가 아침 드시고 천천히 출발하시라고 안 했어!
할머니 때문에 속상해 죽겄네.”
할머니는 화가 난 손녀딸의 눈치를 살피시며 들고 오신 가방 지퍼를 여셨습니다.
할머니가 들고 오신 큰 가방 속에는 김치 통 두 개가 들어있었고,
가방 안은 김치 통에서 흘러나온 빨간 김치 국물로 한 가득이었습니다.
“내가 할머니 때문에 미치겠네. 김치만 비닐봉지에 꼭 싸서 가져오셔야지,
가방에다 김치 통을 통째로 넣어오면 국물이 안 넘친데?”
할머니는 금세 얼굴이 붉어지셨습니다.
“이를 워쩌까. 국물이 다 새서 못 들고 가겄다.
내가 언능 수퍼 가서 봉다리 얻어올팅께 지달려라, 이?”
할머니는 터미널 안 슈퍼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얻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김치 통을 봉지 안에 넣어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네덜이 지덜언 짐치 안 먹구 사나,
노인네가 버스 안에서 김치 냄새 좀 풍겼기로서니,
그렇기 코를 막구 무안을 줘?”
할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받으며
안절부절 하셨을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할머니는 김치 전해 줬으니 그만 가 봐야겠다시며
들고 오신 가방 안쪽 작은 지퍼를 열고
꼬깃꼬깃 접은 1만 원 짜리 두 장을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1만 원 짜리는 빨갛게 물들어서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던 저는 얼른 매표소로 뛰어가
할머니 차표를 끊어다 드리고 할머니를 배웅해 드렸습니다.



그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 안에서
얼마나 소리 내어 울었는지 모릅니다.



할머니가 젖은 가방에서 꺼내 주셨던,
빨간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던 1만 원 짜리 두 장을 손에 꼭 쥐고,
사람들이 가득한 버스 안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역회사에 취직한 저는 돈을 벌게 되었고,
이제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하면 약재시장에 가서
좋다는 약재를 사다 보내 드리고, 할머니 생신이 다가오면
동네 할머니들과 식사라도 하시라고 용돈도 보내 드리고,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와 장으로 구경도 나가고,
명절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도 사 드렸습니다.



처음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를 먹던 날, 할머니는
돈가스 한 접시에 음료로 나온 사이다 한잔까지 쭉 비우신 뒤 말씀하셨습니다.
“양두 얼마 안 되는 것이 참말로 맛나다, 이?
이런 것이먼 몇 접시라두 먹겄다.”
저는 할머니의 그 말에 또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그까짓 돈가스가 얼마나 한다고 이제서야 사드리게 됐을까.
가슴이 아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제가 먹던 접시를
할머니 앞에 내어 드렸습니다.



그날 하얗게 서리 내린 할머니 머리를 내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맛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 드리리라.
남들 먹는 거, 맛있다고 하는 거, 한번씩은 다 맛보여 드리리라.
좋은 옷도 입혀 드리고 멋진 구경도 맘껏 시켜 드리리라.



언젠가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손녀딸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고,
이쁜 새끼 낳아 사는 거 보고 죽으먼 내가 소원이 없을 것인디.”
저는 할머니의 소원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다음 달이면 돌을 맞는 예쁜 딸아이도 낳았습니다.



할머니는 올해로 팔순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우리 남매를 길러 내셨던 할머니는
이제 정말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허리도 구부러지셨고, 검은머리가 한 가닥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너무 늙으셔서 예전처럼 맛있는 문주를 부쳐 주시지도 못하고,
개떡을 쪄 주지도 못하고, 누룽지에 설탕을 뿌려 주시지도 못합니다.
뜨거운 밥에 올려 먹던 할머니의 얼짠지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이제는 그때 그 맛을 내시지도 못합니다.
같이 봄나물을 뜯으러 다닐 수도, 도토리를 따러 다닐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할머니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 하면, 낡고 닳아 헤진 고무신 한 짝이 떠오릅니다.
헌 고무신처럼 평생을 마음껏 가지지 못하고
지지리 고생만 하시며 살아오신 할머니,



이제 할머니가 제 곁에 함께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언제일지 모를 그날까지 제가 할머니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요?
꽃으로 태어났으나 들풀로 사셔야 했던 그분의 인생,
이제부터라도 화사한 꽃으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걸
가르쳐 주신 할머니!
이제 저는 할머니의 사랑과 고생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철이 들었습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우리 할머니 손을 잡고 꽃길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오래 전 눈물나게 아름다웠던 유년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웃어 보고 싶습니다.



올 봄에도 꽃은 피겠지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이 글은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심심이 > 킬링 타임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와 아들의 일기..  (0) 2012.01.05
신성한 양심  (0) 2012.01.04
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0) 2012.01.03
순진함과 순수함의 차이  (2) 2012.01.03
삼양라면  (0) 2011.12.02
Posted by 빈블랭크

고국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질 때에는 인터넷으로 한국뉴스도 보고 개그프로그램도 보고 이렇게 인터넷으로 여러분들의 일상을 구경하며 웃고 눈물 짓기도 하는 서른을 넘겨버린 젊은이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남녀간 데이트 때 더치페이 문제, 루저 소동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제가 받은 사랑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안녕하세요 점점 동이 터오네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무리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글을 다시 쓰려니 표현이 다소 서툴러도 이해해주십시오.

 

 

 큰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부도를 맞으시고 우리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그 등쌀을 피해서 생활하다가 입 하나라도 덜고 학비걱정이나 좀 덜려고 군대를 자원해서 갔습니다.

 제대 후에도 집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학기 휴학해서 돈을 벌고 한학기 다니다가 한학기 또 휴학하고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경남의 한 중소도시 대형마트에서 일했는데 커피나 햄 같은 거 시식할 때 나레이터모델들을 고용해서 유니폼 입혀서 시선을 끌고 손님들의 시식을 종용하는 역할을 맡기는데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모델이 있었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 잘하는 모델들 틈에서 유독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손님들이 다가와서 알아서 시식하고 물어보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더라는 거죠.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인상 깊어서 저도 다가가서 시식하고는 몇 가지 물어보고 했는데

 이 모델분은 나레이터모델답지 않게 말하는 것도 너무 수줍어하고 얼굴 빨개지고...ㅎㅎ
 

 원래는 밤늦게까지 매장정리하고 맨마지막에 퇴근을 하지만

 그날은 죽어도 일찍 가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나레이터모델들 마치는 시각에 맞춰 출구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그분들이 우루루 몰려나와서 각자 집으로 가기도 하고 몇몇은 시내에서 놀기 위해 같이 택시 타고 가는데

 이 여성분만 외톨이처럼 혼자 버스를 기다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저..매장에서 일하는 OO인데, 남자친구 없죠? 저랑 사귀어보는 건 어때요? 저 정말 괜찮은 놈인데요..제발요...주절주절.." 하면서 울상을 지으니까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아! 기억해요" 하면서 아는 척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폰번호를 얻었어요. 저는 돈이 없어서 휴대폰도 없었구요.


 그래서 시식행사가 잡힐 때마다 우린 늘 보게 되었죠.

 그 친구는 일부러 마트 행사를 자원했구요. 일하기 편한 대신 페이가 적어요.
 그래도 제가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나레이터모델분들이 더 많이 받으시더라구요.

 외부행사 나갈 때는 더 많이 받고..

 지명되면 거기서 더 받고..

 


 우린 너무 가난한 커플이라서

 남들 먹는 커피숍이나 스파게티점이나 피자헛에도 못갔어요.
 그리고 학비도 모아야 했고 집에도 보태야 했던 저보다는

 아무래도 돈을 좀더 받고 집안형편도 조금 나은 여자친구가 데이트비용을 거의 부담했구요. 저는 거지 중의 상거지, 개털 중의 상개털이었어요.

 집에서 쫓겨나면서 옷도 못가지고 나와서

 때 묻어도 티도 안나는 아래위로 군복을 구해서 입고 다녔거든요. 잠바도.

 막 입고 아무리 빨아도 티도 안나니까요.

 

 

 크리스마스 때는 길거리의 붕어빵이랑 군밤, 호도과자 섞은 게 우리의 만찬이었고 그걸로도 너무 행복해했어요.

 여중여고 앞 떡볶이도 우리의 주 메뉴였구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그런 거 우리한텐 사치였어요.

 다니다가 꽃바구니 버려진 게 눈에 띄면 주워서 기념일에 부직포와 솜을 사서 뽑기한 작은 인형과  ABC초콜렛이랑 칸쵸 같은 거 담아서 선물했구요. 화려한 케익과 포도주와 잔 두 개도 그림 그려서 앞에 두고 실제로는 초코파이랑 델몬트 병쥬스로 상상 속의 파티를 벌이며 즐거워하곤 했네요.


 저는 몰라도 여친은 착하고 키도 크고 단아한 인상이기 때문에 아마 길거리 고백도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한번도 그런 내색을 안해서 잘 몰라요.

 


 학교 다니면서도 과외도 하느라 만날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저는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도 안되는 사람이었구요. 언제나 제가 연락을 했죠.

 

 한밤 중에 끝나서 언제나 공중전화로 잠깐 통화를 하고

 일요일에야 좀 시간을 갖고 만날 수 있었네요.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여름에는 비 맞아가면서, 겨울에도 외부행사만 고집했대요. 찬바람 부는데도 짧은 치마에 배 드러나는 옷 입고 행사 했었대요. 돈 더 받아서 제 용돈 주고 제 학비 보태주려구요 ㅠㅠ 걔 친구들한테서 들었어요. 자외선과 대로변 자동차 매연과 먼지, 그리고 겨울바람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피부가 깎였을까요..)

 


 학교 다니는 내내 여자친구한테 용돈을 얻어 살았어요.

 처음엔 안 받았는데 여친이

 "나랑 결혼할 생각 없어? 결혼할 생각 가지고 있다면 돈 받아. 내돈이 네돈이니까 부담갖지 마. 그리고 친구들한테 얻어먹지만 말고 가끔 사주기도 하고 인심 잃지 말구. 남자는 인맥이 재산이잖아."

 그 친구가 이렇게까지 얘기해서,

 나중에 결혼해서 다 갚을게 하고 용돈을 받아썼습니다. 걔네 집에서 반찬 다 갖다 먹었습니다. 언제는 쌀도 가져왔더군요. -_-

 

 그 전엔 기본반찬인 김치 살 돈은 물론이고 쌀 살 돈도 없었거든요. 정말 완벽한 거지였네요. 현금은 물론 계좌지급까지 모두 정지 당해서. 맨밥에 간장을 살짝 묻혀 짭짤하게 비벼먹는 게 매 끼니의 반복이었어요.

 

 라면 사먹을 돈도 없어서 마트에서 라면박스 옮기다가 충격 받아서 부서진 게 가끔 나오는데 그걸 100원 씩에 사서 국 대신으로 국물 먹곤 했던 기억이 있네요.

자장면과 짬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중국집 앞에서 냄새만 배부르게 맡고 발걸음을 돌리길 수십번.. 결국 상가에서 내놓은 그릇에 담긴 짬뽕국물을 마시면서 그 갈증을 달래기도했습니다.

 


 저희집이 잘 살 때 제 동생이 사귀던 여자가 정말 착했는데 가난한 집안의 딸이어서 어머니 반대로 헤어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저희집이 가난해서인지 제가 사귀는 여자에 대해 어머니는 별 말씀을 못하시더라구요.

 고졸에 집도 그냥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집이라는 이유로

 예전 같았으면 결사반대 하셨을 어머니께서..

 


 그러다가 저희 아버지 사업이 다시 풀리기 시작해서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집도 찾고 아버지 어머니도 각각 자가용 굴릴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안정되었습니다.

 제 여친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구요.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갑자기 돈 생겼다고 돈 쓰고 다니면 또 예전으로 돌아가버릴까봐 너무 무서웠거든요.

 


 집에 빚이 너무 많아서 아마 나랑 결혼하면

 부모님 빚을 갚느라 40살 넘게까지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 잘하라고 해도 제 여친은,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대. 좀 덜 먹고 덜 입고 아껴서 열심히 살며 조금씩 갚아가면 설마 죽을 때까지 못 갚겠어? 난 자기를 믿어. 내 걱정이라면 하지마. 미안한만큼 평생 나만 사랑해주면 될 것 같은데? "

 그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미안해서..너무나 미안해서..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나레이터모델 친구들이 다 말렸대요.

 술자리에서 저한테 직접 얘기까지 하더라구요.

 착한 희영이 배신하면 자기들이 가만히 안둔다고.
 걔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유학가면 잘사는 여자들, 이쁘고 어린 애들도 수두룩할텐데 바보같은 너는 버려질 거라고.

 

 


 미국에 와서 어학코스를 끝내고 전략협상 분야를 공부했어요.

 쉽게 말해 Negotiator라고 하는데 협상전문가, 협상컨설턴트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한국과 미국이 무역과 시장개방 등의 문제로 FTA 할 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분이 한국측 수석대표로 주도하지 않았었나요? 그런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범죄현장에서 인질이 있을 때나 자살시도자가 있는 현장에 급파되어 일반경찰들이 현장 확보하고 SWAT 이 타격작전개시 하기 전에 쌍방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각국간 군병력, 화기 유지 및 연합훈련 등 각종 협의를 하는 자리에 동원되기도 하고, 혹은 대형그룹들 간의 딜과 기업인수합병을 위해서 고용되기도 해요.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해야 하고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서 우리쪽에 좀더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죠.

 우리 쪽에서 가장 강점으로 내세워 공격무기로 활용할 카드를 찾고, 상대 쪽의 약점을 찾아서 궁지로 몰아서 기를 꺾은 후 살 길을 터주는 식으로 며칠 동안 협상을 이어갑니다.

 상대도 손해보지 않은 듯 맞춰주는 동시에 우리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사수해서 최대한의 소득을 이끌어내는 거죠.

 肉斬骨斷(육참골단), 捨小取大(사소취대)의 사자성어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거죠. 군더더기 여러 조건들을 포용하는 대신 큰 덩어리 두 세 개를 가져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선 20년, 30년 후의 국제정세와 종목에 따른 계산까지 합니다. 물론 상대측에서도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뭔지 알 수 없어야 하는 거구요. 국제관계에서 그때의 종속관계를 위해 몇 십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양방간 상황과 입장에 대해 몇 달 전부터 고용되어 몇 달 동안 밤새며 공부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구요, 계약금, 약속된 수고료 외에 성사될 경우 보너스도 받죠.

 성사율이 낮을 땐 지명도도 떨어지고 금액도 낮아지고 소질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도태될 수도 있는 직업입니다.

 

 미국에서는 많긴 하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대우가 괜찮은 편이구요 한국에선 그런 전문양성과정이 없어서 아직 정부기관 및 대기업에서조차 인식이 미흡하고 금전적 대우도 미국만큼은 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식만 제대로 이해되고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겠죠.

 국내엔 전문가가 너무 희귀하니까.

 


 제가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도 제 여친은 저희집이 아직 빚에 시달리며 힘들게 공부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수시로 돈을 송금해와요. 그거 쓰지도 않고 꼬박꼬박 모아놨어요. 일부러 말은 안했구요.

 

 

 저희집 수준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제가 여기에서 공부마칠 때가 되니까 저희집에 선이 많이 들어온대요. 소위 돈 많은 집안에서요.

 우리나라에 돈 많은 집안이 그렇게 많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대도시 버스운송회사 소유주도 계시고, 서울 강남역 앞에 대형빌딩 몇 채 소유하고 계시는 집안도 있고, 할아버지 때부터 장관, 국회의원 해오신 권력집안도 있고, 거기다 인물도 좋다더군요. 저는 아직 못봤지만.


 여기에서 공부할 때도 유학생들 모임에서 그런 집안 친구들 많았어요.

 유학할 때 저도 몇 번 고백 받아봤어요. 다들 뭐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의 애들요.

 일본이나 유럽애들 같은 다른 외국애들한테도 몇 번 받아봤고..


 그런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거지일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저 하나만 품어 준 그 여자를,

어떻게 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배신을 하겠습니까.

 아직도 부유한 정도는 아니어서 유학생활 내내 일도 하고 돈 정말 아껴썼어요.

 기한 지난 폐기처분 전 바게트빵 싸게 사서 끓인 우유에 불려서 배채웠어요.

 레바논출신 애랑 우범지대 같은 곳에 방2칸짜리 렌트해서 돈 아끼며 지냈어요.

 겨울에 전기장판 하나로 버텼고 여름엔 주워 온 선풍기.

 먹을 거 없어서 쥐도 안와요. ㅎㅎ


 그런데 돈 많은 집안 애들이 비싼 옷 쇼핑하러 다니고 좋은 차 구입해서 놀러다니고 파티하고, 대기업 누구 딸, 어느 병원장 딸 이런 애들이 수두룩한데 걔네 중 몇몇이 호감 비치면서 따라다니면 여러분들은 어떨 것 같은가요?

 전유성씨 말씀대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편안해지는 거 한순간이에요.

 


 그런데 그 여자분들...

 제가 만약 죽을 병에 걸리거나 위험한 순간에 처한다면 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까요?

 그 친구들에 대해선 몰라도 제 여친에 대해선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딴맘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돈은 정말 사람을 편하게 해주더군요. 많은 것을 해결해주고.

 그런데 단지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일뿐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돈은 진짜사랑과 타협하거나 비교하기에는 성질 자체가 달라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단지 사랑을 해치지 않을만큼 최소한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한처럼 맺혔던 돈에 대한 집착을 버렸어요.

 


 이제 한국에 들어가든, 미국에 불러들이든 제 남은 인생 그녀를 위해 희생하려구요.

 그녀가 제게 모든 걸 주었듯 이젠 제가 그녀를 보호해주려구요.

 

 

 평생 한 여자만을 위해 살 겁니다.

 죽을 때까지 제 눈 속엔 그녀 밖에 없을 거예요.

 여자한텐 20대가 인생의 절반이라고 하죠?

 그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20대를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을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려 5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외국에 보내놓고 흔들리지 않고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ㅠㅠ 제가 유학 중에 좋은 배경 가진 여자 만나서 연락 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제 심장을 누군가에게 꺼내 맡겨야 한다면 그녀에게 맡길 겁니다.

 죽을 위험에 처해도 저를 위해 희생할 여자라는 걸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고보니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네요.
 첫번째 이유는, 그녀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어서입니다.
 제가 특별히 화나게 했던 기억도 없지만 다른 일에도 화를 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언젠가 집요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냥 단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자기를 괴롭히려는 의도로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이 답답해서 제가 화나진 않았었냐고 되물었던 사람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제가 화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제게 화를 내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제게 잘못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녀가 제 앞에서 제게 화를 내고 있다는 그 현실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안심할 것입니다.

 화를 내건 어떻건 일단은 제 앞에 있어줬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돈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좋은 요리 먹으러 다니고, 좋은 옷 쇼핑하러 다니고, 비싼 선물 사주고, 기념일마다 몇 만원 하는 선물바구니와 이벤트 하는 거...
 돈만 있으면 어느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해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없어서 눈물 흘리며 미안해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을 위해 자기 수명도 떼어 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제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100을 가졌다면 100 모두 내어주고도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해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살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평생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희영아..
 나 약속 지켰다. 절대 유학 가서 다른 여자 내 가슴에 담지 않겠다고 너한테 맹세한 약속.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거야.

 


 나 너한테 붕어빵이랑 떡볶이랑 캔커피 밖에 못사주고 언제나 버스 타고 데이트 하고,

 너한테 FI*A 운동화 사주려고 했을 때 네가 매장에서 도망나가서 대로변의 잡브랜드 1만원짜리 운동화 골라 신고 나 만날 때마다 그것만 신고 나오고...

 나 정말 거지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인생 막막했는데 네가 나 품어줘서 나 유학 갈 꿈도 가질 수 있었어.

 유학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게 되어도 비웃지 않고 기쁘게 환영해 줄 네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난 돌아갈 곳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

 너 아니었으면 아마 꿈도 잃어버리고 한국에서 대학중퇴에 하루하루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내가 언제든 돌아갈 집 같은 네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안심하고 시도할 거야.

 

 

 네가 전에 보낸 편지에

 "자기가 너무 잘나버려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더이상 없어. 어쩌지? 자기가 그렇게 커져가고 멋있게 변해가는 동안 난 7년 동안 더 늙었고 더 무식해졌고 더 초라해졌네..

 그런 자기 옆에 이런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기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 그러니까..

 정말정말 나보다 더 자기 마음 안에 들어오는 여자를 찾게 되면 그때 나한테 꼭 말해줘.

 내가 봤을 때 좋은 여자면 안심하고 자기 보내 줄 수 있을 거야.

 난 괜찮으니까 자기는 자기가 더 멋지게 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해.

 대신 다음 생이 또 있다면 그땐 꼭 날 선택해줘야해.

 그땐 나도 부잣집에 똑똑한 여자로 태어나서 자기한테 어울릴만한 여자로 태어날 테니깐."

 

 

 희영아..

 나.. 네가 보낸 그 편지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넌 모를거야.

 지금 이 글 쓰면서도 눈물이 흘러서 모니터가 안보여..

 내가 널 두고 어느 여잘 사랑할 수가 있겠어..

 너처럼 좋은 여자는 내가 천번을 다시 태어나도 아마 만날 수 없을 거야.

 네가 나한테 안어울릴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나 내가 배운 공부 다 버리고 붕어빵장수 아저씨로 살 수도 있어.

 내가 익힌 것들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 거라면 말이야.

 


 내가 죽어서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 내 인생에 너를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딱 그것만 말씀드릴거야.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너로 인해서 꽃 피울 수 있었으니까.

 

 

 내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다면,

 지금의 나로 이렇게 키운 두번째 내 어미는 바로 너야.

 내게 아무 힘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 시기에 내 부모가 나를 키우셨고,

 그 두번째 시기에 네가 나를 키웠어.

 

 


 일시귀국일지 영구귀국일지 아직 결정짓지 못했지만

 한국 돌아가면 그때 처음으로 무릎 꿇고 네게 청혼할게.

 

 

 우리..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사랑 지켜왔잖아.

 우리 애들이 컸을 때

 이 글을 보여줄거야.

 그리고..

 

 아빠가 엄마한테 이런 무한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때 이미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였다고,

 엄마는 아무 것도 없는 아빠를 조건없이 품었고 

 그래서 아빠는 큰새가 될 수 있었다고,

 아빠가 할아버지할머니께 생명으로 진 빚이 있다면 

 엄마에겐 녹 슬어 버릴 뻔한 심장과 황폐해질 뻔한 영혼의 빚을 졌기 때문에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에게 빚을 진 셈이라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영원히 빚을 갚는 심정으로 엄마를 사랑할 거라고.

 그게 내가 너희들보다 엄마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니까

 너희들이 이해하라고 

 그렇게 말을 할 거야.

 

 

 사랑한다.

 영원히..

 

 

 

...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그것은

평화요
안식이요
이 세상의 마지막이요
처음이다.


-정호승의 《연인》중에서-

 

.....

'심심이 > 킬링 타임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성한 양심  (0) 2012.01.04
할머니 이야기  (0) 2012.01.03
순진함과 순수함의 차이  (2) 2012.01.03
삼양라면  (0) 2011.12.02
만약 전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줄인다면  (0) 2011.12.02
Posted by 빈블랭크

순진함과 순수함의 차이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잔 두 개가 있습니다.
한 잔에는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고,
다른 한 잔은 비워져 있습니다.

전자는 "순수" 라는 것이요,
후자는 "순진"이라는 것이죠.

순수라는 것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으니,
깨끗함 그 자체이고요.

순진은 비어 있으므로,
그안에 순수처럼 깨끗한 물이 담길 수도 있고,
더러운 물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누군가가
"순수"와 "순진"의 차이를 묻더군요.

순수의 사전적 의미는
"잡것의 섞임이 없는 것",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진"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꾸밈이 없이 순박하고 참되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 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순진하다" 라는 말은
어리석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반면 "순수하다" 라는 말은
자신의 소신이 있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이며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순진" 이란 말은
어릴 때만 간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순진하다면
세상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반면 순수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순수한 사람이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거짓이 없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집니다.
순수한 사람은 주관이 뚜렷합니다.
순수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겸손의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남의 잘못은 용서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합니다.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습관을 가지려 노력하면
순수해질 수 있습니다.

진정 순수해
누가 봐도 아름다워서 나를 닮고 싶어하는
사람 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누가 봐도 부담이 없는,
순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글 중에서-

Posted by 빈블랭크